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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어린이 위한다면, 달랑 선물 하나 말고 기후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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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기후소송’ 참여 12세 한제아·9세 정두리 인터뷰

경향신문

정두리(9)가 이른바 ‘기후소송’의 헌법재판소 공개변론날이었던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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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는 첫 기후 소송 공개 변론이 열렸다. “국가가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했다”는 정부 주장을 두고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탄소중립기본법 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생명권, 환경권, 세대 간 평등권 등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반박해왔다.

헌재 어른 방청인들 사이에서 어린이들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헌재 소송의 청구 당사자이면서 방청인으로 참석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일 방청에 참여한 한제아(12)와 정두리(9)를 만났다. 이들은 “달랑 선물 하나 주고 어린이를 위한다고 하지 말라”며 “우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기후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어린이들은 정부 측이 ‘온실가스 감축’을 미래로 떠넘긴다고 말했다. 국제 기후변화 독립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은 한국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로 정한 수준으로 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인다면 지구 평균 기온이 3~4도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로 한 파리협약의 목표를 한참 넘긴다. 한제아는 “지금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데도 줄이지 않으면 남은 탄소는 우리가 떠맡아야 한다”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구를 막 쓴 어른들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한제아는 오는 21일 헌재 2차 공개 변론에서 발언할 예정이다.

이들은 공개 변론에서 정부 측 발언에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헌재 재판관 정정미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달성할 것에 대해 낙관적으로 예상하는가”라고 질문하자 정부 측 변호인이 “낙관적으로 보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제아는 “어이가 없었다”며 “목표를 더 높게 잡아야 현재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두리도 “이 정도로는 지구가 깨끗하고 평화로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발표했던 제1차 국가탄소중립기본계획은 현 정부 임기 내인 2023~2027년에는 약 5000만t, 다음 정부 시기에는 3년 만에 약 1억5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연도별 감축 계획을 골자로 한다. 참고인으로 공개 변론에서 발언했던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는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 매일 공부해서 10~20점 올리는 건 쉽지만 90점이 된 뒤에 1~2점 올리는 건 어렵다”며 “처음에 많이 줄이고 뒤에 가서 천천히 줄이는 형태는 국제사회의 권고이면서 상식”이라고 말했다. 한제아도 “버리기 쉬운 쓰레기부터 빠르게 버려야 나중에 분리 배출해야 하는 쓰레기도 버릴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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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아(12)가 지난해 9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해 손팻말을 들고 있다. 보호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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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아는 두 살배기 사촌 동생이, 정두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촌 동생이 있다. 두 어린이는 동생들이 겪을 미래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해서 함께 위험한 미래에 놓일까 봐 두려움도 크다. 지난해 9월 가동을 앞둔 신규 석탄발전소가 있는 강원 삼척시를 찾았던 정두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석탄발전소가 운영되면 온실가스가 나오고 가스가 지구를 둘러싸면 뜨거워진다”며 “발전소를 못 막을 것 같고 두려워서 울었다”고 말했다. 한제아는 “4월에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있어서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촌 동생이 자랐을 때는 지구가 더 뜨거워져서 수많은 동물이 죽고, 더워서 죽는 아이들도 생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헌재 공개 변론을 찾았던 수많은 방청객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공개 변론 당일 헌재 심판정에는 104석 규모의 방청석이 예약 신청으로 가득 찼다. 실시간 중계방송을 볼 수 있는 방청석도 40석 규모로 마련됐다. 한제아 본 기사들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나중에 해결하자”고 댓글을 단 사람들이 많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두 어린이는 기자회견에 나섰을 때도 어른들이 ‘저게 뭐냐’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제아는 “우리의 미래를 지키자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봐서 힘이 됐다”며 “(일부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나와서 기후위기를 이야기한다’는 댓글을 달 시간에 어른들이 온실가스를 줄이라는 요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두리도 “평소에는 주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며 “헌재에서 우리가 진다면 복권을 날린 기분일 것 같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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