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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부실폭탄' 터지기 전에 손본다…PF 구조조정, '브릿지론'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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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카운트다운' 시작한 부동산 PF (上)

[편집자주] 135조원+α의 부동산 PF 구조조정안이 곧 공개된다. 부동산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살릴 곳은 살리고 정리할 곳은 확실히 정리하는 신속한 옥석가리기로 시장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부동산 PF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땅값 조정은 구조조정의 필수다.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부동산 PF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해 본다.



3600곳 PF 구조조정, '좀비' 브릿지론 위주로 정밀 타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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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PF 대출액 중 브릿지론 비중 추정액/그래픽=이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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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부동산 PF 익스포져/그래픽=이지혜


금융당국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성 재평가 기준 발표 초읽기에 들어갔다. 약 3600곳에 달하는 PF 사업장의 구조조정 방안이 첫 공개된다. 새 평가 기준에 따라 4단계로 사업장이 재분류되면 약 30조원에 달하는 2금융권 브릿지론(토지매입 단계 PF) 중심으로 PF 구조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일 오전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것은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신속하고 질서 있는 연착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사업성 재평가 발표 시점을 "이달 초"라고 공식 확인했다.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PF 사업성 재평가에 따라 약 3600곳에 달하는 부동산 PF 사업장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금융회사들이 취급한 부동산 PF 대출은 지난해말 기준 공식적으론 135조6000억원이지만 새마을금고를 포함한 비공식 통계론 2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저축은행 토지담보대출, 증권사의 PF 보증도 포함된다.

금융사는 PF사업장을 양호-보통-악화우려 등 3단계로 분류해 왔는데 사업성 평가 기준이 바뀌면 '회수의문' 단계가 추가된다. 회수의문 단계의 사업장은 대출액의 75% 이상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종전 대비 2배 넘는다. 충당금 부담이 대폭 늘어난 만큼 금융회사들은 부실 사업장을 경공매로 처분하거나 재구조화를 해야 한다. 이에 따라 3600곳 사업장의 '살생부'가 사실상 정해진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다만 이번 구조조정의 타깃은 전체 PF사업장이 아니라 브릿지론 PF 중심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에 들어간 태영건설 59개 사업장 중 브릿지론 사업장 중심으로만 정리하는 것과 비슷한 수순이다. 실제 최근 연체율이 치솟고 있는 사업장은 대부분 브릿지론 사업장이다. 인허가 받고 착공까지 한 본PF와 달리 브릿지론 PF는 사실상 제대로된 사업성 평가 기준마저 없었다. 부동산 호황기에 고가에 땅을 매입했다가 사업성 부족으로 2년 이상 본 PF 넘어가지 못한 브릿지론이 최근 '부실폭탄' 근원지로 지목된다.

저축은행 브릿지론의 약 71%는 1회 이상 만기연장을 했으며 이중 2회 연장은 23%, 3회 12%(나이스신용평가 기준)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저축은행 브릿지론 3조9000억원 가운데 1조원 이상 손실이 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가 취급한 브릿지론은 약 30조원으로 전체 PF의 약 20% 이내일 것으로 추정된다. 업권별로 토담대가 많은 저축은행의 브릿지론 비중은 54%로 절반 이상이고 캐피탈 36%, 증권사 24% 수준이다. 은행과 보험사는 브릿지론을 취급하지 않아 타격이 없다.

금융당국은 브릿지론과 유사한 토담대와 공식 통계에서 빠진 새마을금고 브릿지론도 이번 재평가 대상에 넣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시행사와 후순위 2금융권 중심으로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건설사는 브릿지론 보증 규모가 미미해 일각의 우려와 달리 거액의 배상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본부장은 "브릿지론 단계에서 사업 진척이 없는 부실 사업장 위주로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될 수 있다"며 "경공매를 통해 땅 주인이 바뀌고 가격이 40% 이하로 조정되면 신규 자금이 투입되는 등 선순환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버티는 저축은행·새마을금고, 가격 조정 없는 구조조정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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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 연체율 및 당기순이익 추이/그래픽=윤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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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론 중심의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조정을 위해선 땅값 조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인하 기대감속에 부실 사업장 경공매 처분을 꺼리던 2금융권도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당국은 PF 사업성 재평가 기준을 발표하기에 앞서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에 경공매 활성화 대책을 선제 도입했다. 6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은 3개월마다 경공매로 내놓도록 의무화해 가격조정에 불을 당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신협·농협·수협·산림조합 등 상호금융권에 적용하는 모범규준을 개정하고 부동산PF 사업장의 경공매 활성화 방안을 시행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2금융권은 부동산PF 대출이 6개월 이상 연체되면 3개월 단위로 경공매를 실시해 부실 사업장을 처분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유례없는 대책을 2금융권에 광범위하게 도입한 것이다.

2금융권이 일부러 낙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입찰가를 높게 책정하지 못하도록 기준도 강화됐다. 2금융권은 직전 경공매의 최종 유찰가(최저 입찰가)를 다음 경공매 시 첫 입찰가로 제시해야 한다. 3개월마다 이런 방식으로 경공매를 진행하면 사업장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경공매 활성화 방안이 나온 이유는 가격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실 사업장 정리가 지체될 수 있어서다. 그간 사업장을 팔려는 2금융권과 사려는 원매자가 서로 버티며 가격에 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로 인해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2금융권은 부동산PF 대출 원금의 70% 정도를 매각가의 마지노선으로 봤지만 원매자가 제시하는 가격은 원금의 40~50% 수준이었다. 절반 가격으로 사업장을 정리하는 것보단 금리가 인하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업장이 정상화되면 원리금을 회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2금융권은 버티기를 고수했다.

지난해에는 버티기 전략이 가능했지만 연체율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부실 사업장 구조조정이 더 늦어지면 연체율이 치솟아 지난해 7월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자금 이탈) 사태처럼 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질 우려도 있다. 2금융권의 연체율은 이미 7%를 넘어선 상태다. 저축은행 업권의 연체율은 지난해말까지 6.55%였으나 올해 1분기말엔 7~8%대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새마을금고도 최근 연체율이 7%대 중반까지 높아졌다. 신협 역시 최근 연체율이 5%대로 상승해 지난해말 3.63%과 비교해 크게 높아졌다.

연체율 상승에 따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면 자본 확충 등 추가적인 부담도 뒤따른다. 저축은행의 BIS자기자본비율 권고치는 10%(자산 1조원 이상은 11%)다. 그러나 79개 저축은행 중 3~4개 저축은행은 이미 올해 1분기 BIS자기자본비율이 권고치 밑으로 떨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부동산PF 부실로 건전성이 나빠진 상황을 반영해 최근 KB·대신·다올·애큐온저축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일제히 하향하기도 했다.

이달초 금융당국이 내놓을 PF 사업성 재평가의 성공 여부도 결국 가격 조정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성 재평가로 '악화우려', '회수의문' 사업장으로 분류되면 금융회사 충당금 부담이 커진다. 일부라도 자금을 회수하려면 경공매 시장에서 처분하거나 채권을 다른 투자자에 넘겨야 한다. '뉴 머니'가 유입되긴 위해선 가격 조건이 맞아야 한다. 부실 사업장이 계속 쌓이면 폭탄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정상 사업장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유찰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격은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저축은행 쪽에서도 이제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어졌다"며 "조기에 사업장을 정상화하든 수의계약을 맺든 어떤 방식으로든 매각 압력이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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