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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전세계 사생결단 보조금 전쟁 … 이대론 韓 반도체 기반 무너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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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지원 골든타임 ◆

매일경제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경제산업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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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보조금을 주며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 정부의 '칩스법'이 촉발한 경쟁이다. 미국은 자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보조금 혜택을 제공하는 칩스법을 2022년 8월 도입했다. 이로 인해 한국, 대만,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집중됐던 반도체 생산공장이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바뀐 환경에 맞춰 산업 전략과 지원책을 새롭게 짜야 하는 상황이다.

30일 민간 싱크탱크 니어재단이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를 주제로 연 경제산업 포럼에서 산업 분야 석학들은 핵심 전략물자인 반도체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쟁국이 보조금을 포함한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점을 참고해 한국 정부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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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현재 미국 등 각국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산업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그러나 한국 정부의 최근 태도를 보면 현재와 같은 체제와 역할, 사기로 미국 상무부, 일본 경제산업성 등과 산업 전쟁을 치르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 미국 투자가 이어지자 각국은 이제 눈치를 보지 않고 자제했던 산업 보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심지어 미국은 주별로도 보조금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텍사스·뉴욕·아이다호주에선 연방정부와 별개로 자체적인 칩스법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좋은 정책은 경쟁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지방정부 중심으로 인센티브 정책을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 일본, 이스라엘, 대만 등 각지에서 모두 보조금을 도입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만 하지 않는다면 반도체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연구센터장은 "한국은 반도체 제조 공정 역량이 우수하지만,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나 설계 등 기반기술 경쟁력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고 센터장은 "소부장의 경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없고, 기술 난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핵심 분야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반도체 관련 과의 모토가 '24시간 돌아가는 반도체 공장처럼 일하자'는 것일 정도로 지원방안을 열심히 강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세액공제보다 더 큰 혜택을 해외에서 들고나오는 상황이라 아직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고 센터장은 "더군다나 중국이 소부장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존재감을 키워나가고 있어 중국과의 격차가 얼마나 유지될지도 미지수"라며 "그간 중저가 소부장은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였는데, 중국이 미국 수출통제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국 소부장을 쓰다 보니 경쟁력이 높아져 일부 분야에선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권석중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부 교수는 "만약 정부가 반도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다면 보조금을 부동산보다 고가 자산 등 시설에 투입하게 하는 모델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연원호 대외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이미 잘하는 메모리 제조 분야보다 부족한 분야인 소재, 장비, 디자인, 파운드리 같은 분야에 선택적으로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기업들이 서로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상호 촉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형태의 연구개발이 활성화돼야 기술력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신 교수는 "삼성전자 따로, SK하이닉스 따로 연구를 할 게 아니라 공통 부품 등 힘을 합칠 수 있는 분야는 공동연구를 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인텔의 몰락도 연구개발을 폐쇄적으로 혼자 했기 때문인데, 이런 과거 사례를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판 반도체 동맹은 미·중 양자 사이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넘어서 중층적으로 다양한 협력 채널을 넓게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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