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9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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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내일이면 5월이다. 노동자의 날, 어린이의 날,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들이 속해 있다. 누군가에겐 퐁당퐁당 쉬어가는 휴일이겠지만 기념되는 집단이 처한 인권실태가 보고되는 때이기도 하다.
올해 5월엔 매년 있지 않고 올해에만 있는 날이 있다. 먼저 5월14일이다. 6년 만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한국 정부를 심의하는 날이다. 한국은 1984년 가입한 여성차별철폐협약 당사국으로서 2018년 8차 권고에 대한 이행 여부를 답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 권고를 제대로 이행했을까? 2018년 8차 권고문을 보자. 13번 권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라’, 권고 23(a) ‘형법 297조 개정,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부부강간을 명확하게 범죄로 규정하라’, 권고 23(e) ‘직장 내 성희롱 효과적인 관리, 감독, 예방 시스템 수립하라’ 세개 항목만 봐도 ‘이행 0’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권고 불이행을 넘어 성차별, 불평등, 혐오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그마저도 한해 늦었지만) 제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23~2027)에 차별금지법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6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단독 의결해버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 지명 위원의 고의적 훼방으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표명조차 못 하고 있다. 정부는 2023년 형법의 강간죄 개정 과제를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삭제했다. 법무부 장관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억울한 무고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왜곡된 주장을 확산시켰다. 정부는 2024년 고용평등상담실 지원 예산을 없앴다. 24년 전부터 직장 내 성희롱 상담과 지원, 예방, 모니터링을 하던 민간기관이 문을 닫게 됐다. 대통령은 여전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고집하고 있으며,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권고 이행보고를 해야 할 여성가족부 장관도, 여성 폭력 담당 국장도 공석이다.
한국의 성차별 실태보고서는 하루하루 두꺼워지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역할 인식’과 관련한 여성가족부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서, 3년 전보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은 주로 남성이 해야 한다’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이 22.4%에서 33.6%로 1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가사는 주로 여성이 해야 한다’(12.7%→26.4%)거나 ‘가족 돌봄(자녀·부모 등)은 주로 여성이 해야 한다’(12.3%→21.5%)는 동의율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 자신의 성차별 고정관념이 강화된 것일까? 아니면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불황을 거치며 악화된 성별 분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일까? 지난 몇년간 확연해진 약자 혐오, 페미니즘 사상 검증 압력이 반영된 것일까? 보고서에 담기는 성차별, 인권 퇴행의 실태는 뚜렷하다.
또 다른 날은 5월29일이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 딱 한달 남았다. 국회는 정부의 성평등 퇴행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기관이다. 그런데 막무가내 퇴행을 견제·저지하지 못한 채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6년째 부동의 1위다. 이런 이유로 현 정부도 기업이 스스로 채용·근로·퇴직 등에서 성 격차를 공개하는 ‘성별근로공시제’를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정작 공공기관 성별임금 정보공개마저 퇴보시켰다. 국회가 성평등임금공시제 법제화 논의를 앞당겼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5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손 놓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장애,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도 즉각적인 임신중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지침과 원스톱센터 규정에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을 협소하게 기술하고, 무고 여부를 따지거나 본인 혼자 결정하기 어렵게 한 것도 부담을 가중한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가 조사한 보고서에도 응답자 대부분이 2021년 이후 임신 초기에 임신중지를 하고자 했으나 신뢰할 만한 정보와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웠고,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1대, 22대 국회가 읽어야 할 성차별 보고서가 많다. 성차별 보고서는 성별분업과 위계를 깨려고 존재한다. 한쪽에선 제출만, 다른 쪽에선 읽기만 해선 안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써 내려가고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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