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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참사 때마다 빨갱이 딱지 붙이는 거, 4·3이 시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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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할 때마다 ‘빨갱이’라며 왜곡하고 폄훼하는 말이 잇달아 나오는데, 왜 그럴까 의문을 품으며 거슬러 올라가 보니 4·3에 이르게 되더라. 그때의 역사가 지금까지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럼 시작을 살펴야겠다 싶었다.”



김경만 감독의 말이다. 제주 4·3사건은 이미 끝나서 곱게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살아 숨 쉬는 현재다. 게다가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 알지 못하는 사실이 너무 많다.





여성들의 역사와 현실, 연대와 저항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김묘생, 송순희, 다섯 사람의 증언을 전한다. 1949년 고향 섬 제주에서 뜯겨져 육지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던 때, 이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푸르른 청년들이었다.



1947년 3월1일에 시작돼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해제될 때까지 7년 넘게 계속된 제주 4·3에서 서북청년단과 군경에 의해 희생된 제주도민은 3만명에 달한다. 그중 12%가 10살 이하 어린이와 61살 이상 어르신이었다. 무작위로 학살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은 또 다른 희생자가 있었다. 바로 수형인들이다.



1949년 3월, 초토화 작전을 피해 한라산에 숨어 있던 1만여명의 주민들은 선무작전에 따라 뿌려진 ‘삐라’를 보고 산에서 내려온다. “하산을 하면 과거의 죄를 묻지 않고 생명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풀려난 사람도 있었으나 무참하게 총살당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 중 1650여명은 육지의 형무소로 옮겨졌다.



제대로 된 재판 따위는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들은 큰 강당에서 차례차례 절차도 이유도 없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수형 생활은 제주에서 겪어야 했던 참상에 비하면 차라리 구원과도 같았다. 고문과 약탈, 살인. 때로는 침묵 속에 잠겨 있는 성폭력까지. 오죽하면 감옥에 와서야 “이제야 살았구나” 했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수감 생활은 힘들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일부는 남한군에 의해 학살당했고, 일부는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이후 ‘실종자’로 처리되었다. ‘무사히’ 출소했다고 해도 고통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 지옥을 겪고도 수십년 동안, 말 한마디를 제대로 꺼낼 수 없었다. “빨갱이” 딱지 하나면 모든 것을 끝장낼 수 있었던 시절의 돌덩이와도 같은 침묵이었다.



다큐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증언자는 모두 여성이다. 대체로 남성 생존자와 목격자의 말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제주 4·3 증언 기록에서 사소하게 취급되거나 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다. 4·3 연구에 젠더 관점을 더한 단행본 ‘4·3 속삭이는 내러티브’에서 송혜림은 “여성의 ‘가장 아래로부터의 기억’은 4·3의 총체적인 전체상을 형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의 서문에서 고성만이 짚고 있는 것처럼, 그 ‘가장 아래로부터의 기억’을 듣고, 기록하고, 해석해서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남성 중심적인 내셔널리즘, 가부장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신고주의와 실증주의, 인정투쟁 등을 통해 추동되는 ‘청산’과 ‘해결’을 향한 역사 쓰기가 누락해 버린 여성들의 “역사와 현실,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작업들의 문제의식은 정해진 목표로 수렴되는 4·3 담론과 “긴장을 일으키며 팽팽하게 맞서”면서 어떤 분기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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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과 관광지 사이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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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가 박순석 선생을 당연하다는 듯 소개하는 것 역시 이런 태도 안에 있다. 선생은 남로당에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건국전쟁’처럼 4·3은 ‘빨갱이 척결’이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버젓이 극장에 걸리는 시절에, 이와 같은 대담한 선택은 언제고, 또 어디에서건, 4·3의 이야기를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기로부터 가능해진다. 다큐는 성급한 청산이 아니라, 이후로도 지속될 4·3의 창발적 현재를 다룬다.



이제 이 분기점으로부터 또 다른,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로 접어들어 보면 어떨까? 제주는 용감한 여성들의 섬이었다. 특히 식민지 시기, 어용 조합의 횡포에 저항하는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시작된 해녀항일운동은 뜨거웠다. 일제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항일운동이었지만, 그 역사적 평가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를 이끌었던 이들이 야학에서 사회주의 교육을 받았던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3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라고 말하는 박순석 선생의 말이 뜨겁게 다가온다. 다른 세상을 꿈꿨기에 사회주의에 몸을 담았던 제주 여성들의 이야기는 봉합되지 않는 갈등을 감수한 채로 더 급진적인 역사화 혹은 현재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크나큰 슬픔의 권능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르게 다스려주소서.”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북촌 위령비에 새겨진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선생들의 이야기에는 슬픔이 서려 있고, 그 슬픔에는 역사를 빠르게 청산하고 잊으려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권능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그 권능을 매개하는 건 제주의 자연이다. 김경만 감독은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몽타주로 활용하면서 선생들의 이야기와 관객들을 엮어낸다.



그리고 그 몽타주가 담아내는 건 자본과 개발의 논리가 닿지 않은 제주의 어떤 모습들이다. 종종 육지인들은 제주가 ‘무덤과 관광지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이 말에는 지금 제주가 몸살을 앓고 있는 난개발의 문제가 4·3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국가 폭력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녹아 있고, 다큐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다.



다큐 제목에 영감을 준 시에서 김소연 시인은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과 우정을 나눌 차례가 왔고 아침이 왔다/ 주워온 조약돌 하나를 꺼내어 마주했다 돌이 말을 할 때까지.” 오늘 나는 돌의 말을 들었다. 이제 그들이 건넨 우정에 나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영화평론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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