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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이란혁명… 사진 두 장 그 바깥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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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하면 떠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전후를 비교하는 두 장의 사진이다. 한 사진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대생들의 모습이, 다른 사진에서는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머리와 몸매를 모두 가린 여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 두 사진은 ‘사회를 대대적으로 퇴보시킨 무지몽매한 종교 혁명’을 고발하는 매우 전형적인 이미지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이 이란 이슬람 혁명과 이후에 등장한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두 장의 사진으로 간단히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란 현대사를 공부할 때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역설은, 근대화를 표방한 팔레비 왕정의 근대화 성적은 실망스러웠던 반면, 근대의 기획을 넘어서자고 했던 이슬람 혁명 정부가 근대화에서 훨씬 더 빛나는 성취를 거두었다는 데 있다.

조선일보

이슬람 혁명(1979년) 이전인 1971년 이란 테헤란대 학생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016년 이란 여성들이 차도르를 쓰고 반(反)사우디아라비아 시위에 참석한 모습. /이란 전문 매체 파르스타임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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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부터 1979년까지 재위한 팔레비 왕조의 두 번째 군주는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 샤였다. 그는 선대 왕인 아버지의 근대화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나섰지만, 아버지와 달리 자신을 뽐낼 수 있는 과대망상적인 구상과 전시성 사업에 더 치중했다. 예컨대 모하마드 레자의 치세에 테헤란 거리에서 상류층 여성들은 세련된 옷을 입고 거리를 걸을 수 있었지만, 지방의 여아들이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은 몹시 어려웠다.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아들을 학교에 보내 여성 문해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이슬람 혁명 정부였다. 혁명 직전 36%에 불과하던 여성 문해율은 1996년에 72%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 아이러니의 비결에는 혁명 정부의 강력한 사회 장악력이 있었다. 전국적인 모스크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지역사회의 말단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신체제의 근대화 정책들은 이슬람의 언어를 통해 추진되며 시골의 가장 보수적인 노인들도 설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침공하며 시작된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국민적 단결의 분위기도 더해졌다. 팔레비 왕정 시절에 기회가 박탈되었던 빈곤층이 혁명과 전쟁에 참여하며 근대적 중산층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역설은 다시 이어진다. 혁명 정부의 성공적인 근대화의 결과, 세련된 도시 문화를 갈망하는 중산층 청년이 광범위하게 등장했다. 이들은 히잡을 비롯한 복장 통제에 저항하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자유롭게 연결되고자 하며, 주기적으로 거리 시위에 나가 체제에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란을 여행할 당시에 그곳 청년들에게서 종종 들었던, 팔레비 시대를 ‘잃어버린 과거’로서 낭만화하는 이야기는 나를 종종 혼란스럽게 했다. 팔레비의 실패는 혁명을 낳았다. 그 혁명은 도시 중산층을 만들었고, 그 중산층이 이제 다시 팔레비 시대를 추억하는 것이다.

이란의 경험은 역사에서 ‘진보’와 ‘발전’을 정의하기가 무척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들은 복장의 자유가 사라진 것을 보며 이란이 혁명으로 퇴보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교육과 보건에서 혁명은 이란 사회를 대대적으로 발전시켰다. 이슬람 공화국하에서 이란은 진보했는가, 퇴보했는가? 이란은 불완전한 발전을 경험한 것인가, 아니면 서구와는 다른 대안적인 길을 개척한 것인가? 이 질문에 관해 여행자이자 외부인인 나 자신의 대답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호오를 표하지 말고,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라고 다를까?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명백한 발전의 역사였다. 그 결론은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그야말로 ‘역사 전쟁’이 벌어진다. 전통 왕조, 식민 통치, 암살과 내전, 독재 정권과 혁명 세력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 사건이 역사책을 가득 채운다. 이 장면들을 모두 현재의 채점 기준에 맞춰 성적을 매기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지금 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과잉된 판단과 단죄, 칭송을 내려놓고 먼저 다시 옛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는 것이 아닐까. 사진 두 장만 보고 과거를 판단하는 일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니 말이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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