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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정부는 200~500명 증원하고, 전공의는 환자 위해 복귀해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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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장기화로 한계를 호소해온 의대 교수들이 주 52시간 단축 근무를 이어가는 가운데 지난 3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내원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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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범 |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성급한 개혁으로 사태를 초래한 정부는 애타게 타들어 가는 환자들은 살피지 못하고 있다. 2월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재정 투입 계획과 로드맵이 명확지는 않으나, 의료위기를 해결하려는 정부 노력에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2000명 의대 증원 발표 후 전공의들에게 행해진 겁박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폭력적 방식이었다. 11만명이 넘는 의사들을 의대 증원에 저항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내모는 폭거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국 의료는 세계적 수월성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빠져 있다. 환자들이 응급수술해 줄 곳을 찾아 헤매고, 생명을 지키는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내과는 기피하고, 소송 적고 수익 높은 분야로 학생들이 몰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가 2022년 9.7%까지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 9.4%를 넘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의료비 상승은 가계 파산의 주요 원인이다.



현 의료문제는 누적된 정책 실패와 오이시디 대비 적은 국가재정 부담에서 비롯했다. 원가 70%의 저수가로 설계한 건강보험제도, 1998년 진료권 개념과 의료전달체계 폐지, 2017년 보장성 강화를 위한 실손보험 확대 등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다. 건강보험제도는 14% 국고 지원으로 모든 수가를 통제하고 요양기관을 지배해 저수가 체제를 고착화했다. 의료비 국가재정 부담비율은 오이시디 평균이 73%인데 반해 우리는 38%고, 공공병원 규모도 미국이 23%인데 반해 우리는 6%에 불과하다. 정부는 돈을 쓰지 않으면서 모든 의사 공급자를 통제해 온 것이다. 이것이 의료 위기의 직접 요인이다. 잘못된 정책은 국민의 의료 이용행태를 왜곡시켰다.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경증환자가 대학병원으로 몰렸고, 지방 환자들은 고속철도를 타고 수도권으로 몰렸다. 의사들도 잘못된 의료정책에 길들여졌다. 정부는 의사를 개혁 주체로 존중하기보다 끌고 갈 대상으로 취급했고, 저수가는 개선하지 않았다. 의료계는 실손보험제도에 타협해 비급여 진료가 증가했다. 의사들은 의료시스템을 개혁하고, 잘못된 행태는 자정해야 했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조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현 의료 사태는 개혁 주체인 정부, 국민, 의사 모두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잘못된 정책과 정치의 실패, 그것에 타협해온 선배 의사와 교수가 짊어질 고통을 대학병원에서 주 80시간 이상 노동과 당직근무로 지친 전공의들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직·휴학을 통해 국민은 의료문제의 일부나마 이해하게 됐다. 걱정스러운 일들도 있다. 1·2차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으나, 합병증 가능성이 큰 환자, 치료가 복잡한 환자, 재발하거나 병합절제가 필요한 중한 환자들의 치료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제기한 의사 부족과 의료 위기의 인과성은 논란이 많다. 서울의대, 한국개발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연구결과가 의사 증원을 제안했으나, 모두 점진적 증원을 권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외과계 전문의는 미국보다 1.3~1.7배 많으므로, 의사 증원보다 미용·피부로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기존 연구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저출산, 필수의료정책의 성공, 의료전달체계, 의료이용 감소, 인공지능 적용은 미래 의료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오히려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사교육 시장 팽창, 의료비 건강보험 위기, 이공계 붕괴 등으로 몰고 갈 불확실성을 생각해 다음 두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대통령과 정부에 촉구한다. 개혁을 위한 국가책임은 이해하나, 설득과 조정 없는 숫자 집착은 의료의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의료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전공의 학생들의 눈물겨운 외침을 의료개혁으로 화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관련 단체 주장대로 일단 200~500명 증원할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 이후 협의체에서 매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가치 있는 필수의료에 당당하게 앞다퉈 헌신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성공한 의료개혁, 성공한 대통령 아니겠는가?



둘째, 전공의 학생들은 환자와 국민을 위해 당당하게 복귀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환자를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며, 환자를 생각하지 않고 불통의 정치를 벌이는 정부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복귀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으나, 지금 돌아올지 잠시 유예할지는 각자의 선택으로 존중한다. 의사는 환자 옆을 지킬 때 국민이 함께하며, 의료를 개혁해 나갈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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