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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AI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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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의료 기업 루닛, 카이스트 힙합 동아리 백승욱 박사가 창업

X선 사진 판독하는 AI 상품화… 데이터 쌓일수록 인간보다 정확

의료 윤리·직업 윤리 강화… 진단·상담 둘 다 가능한 AI 의사 시대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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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부터 SK하이닉스와 공동으로 적층형 반도체 설계 연구를 진행해 왔다. 특히 HBM(고대역폭메모리)의 데이터 전송 대역폭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연결선 구조와 전력 공급 회로를 연구해 왔다. 그때 공동 연구에 함께 참여한 학생 중에 ‘인공지능 의료 기업’인 ‘루닛(Lunit)’의 이사회 의장 백승욱 박사도 있었다. 탄탄한 전공 실력과 리더십, 그리고 도전적 자세는 이미 학생 때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루닛은 백승욱 박사가 KAIST 학부생 힙합 동아리인 ‘구토스(Ghuttos)’의 선후배 6명과 같이 창업한 인공지능 벤처기업이다. 2013년에 설립한 루닛은 흉부 X선 사진 판독의 정확성을 높이는 인공지능을 상품화했다. 이를 통해서 폐암과 유방암 등의 정확하고 편리한 조기 진단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시민 대부분이 흉부 X선 검사를 받는다. 건강검진에서 쓰이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검진 방법이다. 이렇게 루닛은 인공지능을 통해서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한다. 루닛의 기업 신조가 ‘인공지능으로 암을 정복합니다(Conquer cancer through AI)’이다.

루닛은 미국의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에 합류해 유수의 다국적 제약사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발병률이 높은 5대 암뿐 아니라 모든 암을 조기에 발견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시험 중인 치료제가 환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찾는 ‘AI 바이오 마커’까지도 개발하고 있다. 2017년에는 엔비디아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5대 인공지능 스타트업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래에는 의료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하고자 한다. 10년 안에 연 매출 10조원과 영업이익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밝혔다. KAIST 학생들이 루닛과 같은 인공지능 기업을 100곳쯤 창업했으면 하는 꿈을 꾼다.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 쓰는 대표적 인공지능으로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합성곱신경망) 모델이 있다.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사람의 얼굴과 뇌를 대체한다면 CNN 모델은 사람의 ‘눈’과 그에 연결된 ‘뇌신경’을 대체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판독하려는 의료 영상 사진은 수학의 ‘벡터’ 형태로 담아 입력된다. 입력 벡터는 디지털 숫자의 묶음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많은 수학 ‘행렬곱셈(Convolution)’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행렬은 2차원적 숫자의 배열이다. 학습을 통해서 여기에 담긴 숫자(파라미터)를 정해 간다. CNN의 최종적 출력으로 수학 ‘확률 분포’가 나온다. 예를 들어 X선 사진을 입력하면 출력으로 사진 속 물체가 ‘암’일 확률을 내놓게 된다. 일종의 확률 예측 기계인 셈이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결국 인간은 출력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해서 다음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의료 영상 사진을 많이 보고 판독 연습을 많이 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충분히 판독 연습을 많이 하면 나중에는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게 된다. 현대 의학에서 CT, MRI, 초음파 진단 기기를 필수적으로 쓰듯이 미래에는 인공지능을 필수적으로 함께 쓸 것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제일 먼저 의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의료 영상과 데이터 분석이다. 이에 기초해서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처방할 수 있다. 미래에는 처방도 추천할 수 있다. 원격의료에도 사용될 수 있다.

국민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편리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의료진도 거기에 부합하여 시스템을 갖추고 각자 임무에 맞게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의료 체계 중 하나가 원격의료다. 특히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결합해서 이러한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원격진료에서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생성 인공지능인 LLM(거대 언어 인공지능) 모델이 사용될 수 있다. LLM은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된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이다. 인간처럼 말도 하고 알아듣기도 한다. 친절하게 환자와 주기적으로 연락해서 상담하고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진단은 CNN이 하고 상담은 LLM이 한다. 이렇게 CNN과 LLM이 합쳐진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이 탄생하고, 의료 데이터와 교과서 그리고 논문으로 학습을 계속하면 최종적으로 의료 전문 인공지능이 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의료 윤리와 직업 윤리도 강화 학습 방법으로 훈련을 마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인간 의사처럼 국가고시를 치를 수도 있다. 다만 당분간 최종 결정 권한은 인간 의사가 갖도록 하고 주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사해야 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의사의 부담도 줄이게 된다. 미래에는 샘 올트먼이 세운 ‘오픈AI 병원’이나 젠슨 황이 세운 ‘엔비디아 AI 병원’에서 원격으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운영하는 인공지능 플랫폼 ‘바이오니모(BioNeMo)’가 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서비스를 생명 과학과 신약 개발 분야에 이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철학은 오늘날 의료인의 윤리적 지침으로 이어져 의사가 될 때의 의식 행사인 ‘히포크라테스 선서, 제네바 선언’에도 담겨 있다. 그 선언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이제 인간 의사뿐 아니라 인공지능도 이러한 선언을 해야 할 시대가 올 것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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