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각종 세금 감면책... 입법 현실화 불투명
야당 '입법 강행' 후 대통령 '거부권' 악순환
윤석열 대통령이 5일 부산 명지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를 하며 투표함에 용지를 투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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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완패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정국을 벗어나지 못한 헌정사 최초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물론 남은 임기 3년간 거대 야당의 압박을 견뎌야 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입법 권력을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평가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5년 임기 내내 여소야대 지형에 놓였던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87년 체제' 이후 윤 대통령을 포함한 8명 중 5명이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임기 중 총선에서 '역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임기 중 총선(2000년)에서도 야당에 패배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야당 의원 빼오기' 등으로 여대야소로 개편, 임기 내내 여소야대를 겪지는 않았다. 사실상 윤 대통령이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소야대가 현실화되면서 윤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3년은 지난 2년간 겪은 고난의 '데자뷔'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국회가 가진 권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각종 정책을 뒷받침할 법안 재·개정은 물론, 정상적인 공약 이행과 국정과제 추진 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총선 직전 윤 대통령과 여당이 내걸었던 각종 공약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진행했던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상속세 부담 완화,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등을 내걸며 민심에 소구했다. 안 그래도 "비현실적 재정 투입" 등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마당에 이를 그냥 두고 볼 리는 없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위해 추진하려는 입법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우려를 일찌감치 참모들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걱정이었다. 실제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주요 정책이 거대 야당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이 대표적이다. 현재 여가부는 김현숙 전 장관 사임 후 차관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 인프라 관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재건축 안전진단 개선 관련 개정법 등 윤 대통령이 이미 입법과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법안만 해도 여럿이다.
결국은 윤 대통령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다. 남은 임기를 '무한 갈등'으로 점철됐던 지난 2년과 같은 방식으로 보낼 것인지, 협치를 통해 국회 권력과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여전히 윤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성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여야의 협치와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입법을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답하는 모습이 반복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양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이태원 참사법 등에 아홉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남은 3년은 이런 반복만 무수히 되풀이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이 '대통령령(시행령)' 정치에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2022년 9월 검찰 수사권을 회복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고, 지난해엔 TV방송(KBS·EBS)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따로 떼어 분리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하는 등 시행령 정치를 보였다. 지난 2년의 반복인 셈이다.
10일 오후 6시 방송 3사(KBS·MBC·SBS)의 출구조사 발표와 이후 개표 상황을 지켜본 대통령실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윤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한남동 관저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르면 11일 이번 총선 결과와 민심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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