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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미국 우선주의, 아내 중심주의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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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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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약한 시간이 됐다. 트럼프의 복귀에 전 세계가 머리를 싸맸다. 동맹은 뒷전이고 으름장이 먼저인 그의 막무가내를 누차 봐왔다. 서명을 마친 방위비분담금과 한반도 안보의 핵심인 주한미군을 들먹이며 언제 비수를 꽂을지 모른다. 챙겨야 할 이익 앞에 숭고한 자유의 가치는 거추장스러운 포장일 뿐이다. 미국, 일본과 같은 편으로 뭉쳐 스크럼을 짜는 데 익숙한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확실히 받으라고. 일본과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이나 사도광산 추도식처럼 ‘통 큰’ 결단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통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주고받기에 서툴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아무것도 내주려 하지 않으니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과도 번번이 얼굴을 붉힌다. 초반부터 후려치며 거칠게 압박하는 트럼프를 노련하게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허점이 두드러졌다. 사과를 하면서도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얼버무렸다. 회피와 변명에 특유의 솔직함이 묻혔다. 정확하고 간결한 표현으로 정곡을 찔러도 시원찮은 판에 검사 출신답지 않게 변죽만 두드렸다. 틈만 보이면 파고드는 ‘거래의 달인’ 트럼프의 집요한 공격에 어떻게 맞설지 걱정이 커지는 대목이다. 임기응변으로 강짜를 부리는 데 정평이 난 트럼프다. 사실관계가 틀렸다면 뒤통수를 맞기 전에 윤 대통령이 깐깐하게 따지며 바로잡아야 할 텐데 그저 우리 함께 잘해보자며 어물쩍 넘어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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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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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한 현실 인식은 더 문제다. “제 처를 악마화한다”면서 “순진한 면이 있다”고 감쌌다. 윤 대통령이 부부싸움을 하든 말든 알 바 아니다. 하지만 국정농단이라는 지적에 발끈해 애먼 국어사전을 꼬투리 잡는 모습은 분풀이로 비친다. 중심에 아내가 있고 국민을 밀쳐내는 지독한 이분법이다.

트럼프도 친구와 적을 나누는 양자택일 세계관에 갇혀 있긴 마찬가지다. 다만 스케일이 다르다. 수틀리면 혼쭐내겠다고 달려든다. 오랜 동맹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대선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으로 낙인찍어 선공을 날렸다. 원하는 만큼 돈을 뽑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나올지 가늠할 수 없다. 가족을 지키는 데 급급해 보이는 윤 대통령에게 버거운 상황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벼른다. 의회도 장악해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했다. 반면 우리는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며 국론이 쪼개져 가진 힘조차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처지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대통령 내외를 쥐고 흔든 일개 정치 브로커의 기행에 참담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야당의 지원사격은커녕 대통령이 국회를 외면하며 분열을 자초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달리 술을 전혀 입에 안 대는 트럼프와 스킨십을 넓히려 골프채를 잡았다지만 거짓 해명 논란에 잡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민심은 매섭다.

제1야당 대표가 발목 잡힌 사법리스크에 안도할 때가 아니다.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아예 뭉개는 국내 정치의 일방적 문법으론 어림없다. 고작 20%를 오르내리는 빈약한 지지율로 스트롱맨과 겨뤄야 한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며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문재인 정부도 끝내 뒤통수를 맞았다. 여태껏 윤 대통령이 경험해보지 않은 냉혹한 줄타기가 시작됐다.

김광수 정치부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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