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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연금과 보험

국민연금, 올해 주총 親기업적인데… 임원 보수 한도 상향엔 무더기 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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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에도 상당수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전반적으로는 기업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이사 보수에 관해서만큼은 반대 의결권을 무더기로 행사했다. 경영 성과 등을 고려할 때 이사들에게 줄 수 있는 돈의 최대치가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기업은 위로금 지급이 필요한 이사 퇴진 등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해 보수 한도를 넉넉하게 잡아두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이 유독 이사 보수에만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조선비즈

조선 DB



◇ 매년 ‘이사 보수‘ 안건에 반대 집중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3월 정기 주총 시즌 동안 인터넷 홈페이지에 90개 넘는 기업(3월 29일 기준)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시했다. 사전 의결권 공개 대상은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1% 이상인 상장사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만 138조원(2024년 1월 말 기준)을 굴리는 초대형 연기금이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결권 행사 내용을 훑어보면 공통점이 눈에 띈다. 제법 많은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액 승인 안건에 반대 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 기간에 전반적으로 친기업적인 모습을 보였다. 밸류업 기조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무리한 주주제안에는 호응하지 않고 기업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사 보수 한도에 대해서만큼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삼성물산, 효성중공업, 삼성전기, 우리금융지주, 대한항공, 롯데정밀화학, 포스코홀딩스, 셀트리온, LG화학, LIG넥스원, 현대해상, CJ대한통운, 농심, 대상 등의 이사 보수 한도 안건이 국민연금의 반대표를 받았다. 경영 성과 대비 보수 한도가 과하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이사 보수 한도는 기업이 상근이사·비상근이사·사외이사 등 등기이사에게 줄 수 있는 보수의 총액 한도를 정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사의 보상과 관련해 원칙적으로는 주총의 권고 안건 제안을 따라야 한다. 단 성과와 보상의 연계성, 보상 수준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땐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국민연금은 예전에도 기업이 성과에 비해 이사 보수를 너무 후하게 책정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삼성중공업, 하나금융지주, 한국금융지주, 넷마블, 카카오, SK이노베이션 등 다수 기업의 보수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작년에 던진 반대표가 총 692건인데, 이 중 309건(44.7%)이 ‘이사 및 감사 보수’ 안건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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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DB



◇ 기업은 ‘임원만 챙기는 회사’ 이미지 우려

물론 반대표가 의도한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이사 보수 한도 안건 대다수는 매년 기업 뜻대로 주총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사 보수 한도를 늘렸다고 해서 이사가 실제로 받는 돈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라며 “갑작스러운 퇴직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떠나는 이사에게 위로금을 차질 없이 지급하고자 보수 한도를 넉넉하게 설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상장사 관계자는 “이사 보수 한도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찬반을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납득하기 힘들다는 업체가 많다”며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는 연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 통과 여부와 별개로 해당 기업은 ‘돈도 못 벌면서 임원에게 돈만 많이 주려는 회사’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보수 수준을 바라보는 주주와 기업 간 시각차가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로선 이사 보수를 주주가 내는 비용으로 인식할 테니 한도 증액이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다”며 “임원 보수를 적게 주면 배당금으로 받을 수 있는 순이익이 그만큼 증가한다고 여길 것”이라고 했다.

한편 올해는 이사 보수 한도를 자진해서 축소한 기업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는 이사 보수 한도를 지난해 480억원에서 430억원으로 줄였다. SK는 220억원에서 180억원, LG는 180억원에서 170억원으로 각각 축소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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