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수액 6만원, 백옥 주사 4만원….’ 포털 사이트에서 일부 의원이 내건 비급여 주사별 가격표다. 이들 의원에 전화하니 대부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손보험 적용이 가능하다는 걸 강조했다. 서울의 한 내과 의원은 “어디가 아파서 주사 맞았다 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비급여 주사 쇼핑’이 엔데믹을 타고 다시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 처방’과 실손보험 덕분에 본인 비용 부담이 적은 환자의 ‘니즈’가 맞물린 영향이다. 13일 대형 손해보험사 4곳(삼성·현대·DB·메리츠)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급여 주사제의 실손보험금 지급액(호흡계·근골격계 질병 진단 기준)은 2018년 1395억원에서 지난해 3193억원으로 늘었다. 5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2020~2021년엔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소폭 줄었지만, 2022년부터 가속이 붙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호흡계 질환에 속하는 독감 관련 보험금이 484억원으로 전년(39억원) 대비 약 13배나 늘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8년(61억원), 2019년(89억원)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늘었다. 비정상적인 급증세라는 게 보험 업계의 판단이다. 마스크를 벗으면서 독감 유행세가 커진 여파도 있지만, 건강보험 적용 대상인 타미플루(알약) 대신 비싼 비급여 수액 주사제나 치료와 거리가 먼 영양제 등을 적극 유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동 환자가 많이 발생해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간편한 주사제를 선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2월 B형 독감에 걸렸던 직장인 진모(54)씨는 “의사가 ‘알약은 여러 번 복용해야 하지만 수액은 한 번만 맞으면 된다’면서 은근히 비급여 주사제를 권했다”고 말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의사가 단순 기력 회복용 영양 주사제를 처방했는데 독감 치료 목적이라고 소견서를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비급여 주사제 가운데 비중이 큰 기타 호흡계 질환(감기 등), 근골격계 질환(관절통 등)의 실손보험금 지급도 꾸준히 늘고 있다. 독감을 제외한 호흡계 보험금은 2021년 278억원에서 지난해 848억원으로 3배가 됐다. 근골격계도 같은 기간 1441억원에서 1860억원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요통이나 관절 치료 등을 위한 처방도 많지만, 감기·몸살 같은 가벼운 질환에도 비급여 주사를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병의원을 자주 찾아 비급여 주사를 많이 맞는 환자 사례도 나오는데, 실손보험을 이용한 과잉 처방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비급여 진료 지형도도 바뀌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손해보험 업계가 실손 가입자에게 지급한 비급여 주사제 보험금은 4104억원이었다. 금액 기준으로 물리치료(1조8677억원), 백내장 수술(7083억원)에 이은 3위다. 하지만 지난해엔 백내장 수술과 비급여 주사제가 2, 3위 자리를 맞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 목적을 벗어난 주사제 처방 ‘누수’를 방치하면 손보사·가입자 모두에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보사는 보험금 지급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그만큼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로 전가될 수 있어서다. 손보 업계는 관련 보험금 청구 서류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정종훈·이아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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