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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타이베이 101 빌딩은 왜 솥을 쌓아올린 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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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풍수는 미신에 그칠까 대만에서 본 풍수의 미래

조선일보

대만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빌딩 전경. 입지부터 전통 풍수를 참고했고 8개 층씩 묶어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솥을 쌓은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김두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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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으로서 풍수는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적 성장 산업(international growth industry)으로 커 갈 것인가?’ 최근 서구에서 출간된 몇몇 풍수 학술서들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자본주의의 공간 정복(capitalism’s conquest of space·부동산 투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풍수, 풍수의 서구화, 풍수의 상업화 등이 키워드다.

영국 리버풀대 마데듀 교수가 출간한 ‘풍수와 도시(Feng Shui and the City·2021)’가 대표적이다. 마데듀 교수는 “건축 풍수는 해당 건축물과 부동산 가치 증대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이롭게 하는 문화적 관계항(cultural referent)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는 지금의 건축 설계에서 풍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풍수는 고전 해독과 오랜 실무를 통해서 터득된다. ‘풍수의 땅’ 타이완·홍콩 말고도, 건국 초 풍수를 부정했던 사회주의 중국도 2000년대에 들어와 ‘하나의 문화’로 공식화하였다. “문화가 건축 계획을 규정한다(culture shapes planning)”라는 문장이 나온 이유이다.

풍수가 반영된 건축물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가? 서울의 랜드마크 롯데타워에도 풍수 관념이 드러난다. ‘123′층이란 숫자(1→2→3으로 확장), 555m(5는 중앙을 상징), 석촌호수와 한강 사이에 위치(물은 재물운 향상), 타워의 붓 모양(문방사보 가운데 으뜸이 붓) 등이 그 흔적이다.

그런데 풍수 문화를 의도적으로 반영한 건물이 있다. 대만 여행의 필수 코스인 타이베이 ‘101빌딩(101大廈)’이다. 서구 첨단 과학과 동양 풍수 미학의 합체이다. 풍수는 건축·조경과 더불어 중국 건축의 3대 지주였다. 어떻게 풍수가 반영되었을까?

입지부터 전통 풍수를 참고한다. 지금의 타이베이는 청나라 때인 1875년 타이베이 성(城) 건축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남북축의 성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극성은 제왕의 별이다. 왕성이 아닌 지방성의 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북동쪽 칠성산으로 방향을 13도 틀어서 성곽의 위치를 정하였다. 대신에 성문과 주요 교차로는 칠성산의 기운을 받게끔 북두칠성을 형상화하였다. 101빌딩은 북두칠성 국자 모양에서 자루 끝부분에 자리한다. 북두칠성의 생기와 왕기(旺氣)를 받겠다는 의도였다.

조선일보

대만 타이베이의 101빌딩. /김두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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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빌딩’ 이름부터 풍수이다. 원래 이름은 ‘국제금융센터’였다.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사고가 빈발하여 사상자가 났다. 이에 이름을 정식으로 ‘101빌딩’으로 바꾸었다. ‘101′에서 일(一)은 양, 0은 음, 즉 ‘양음양’ 구조로 팔괘의 이괘(離卦: ☲·101)를 상징한다. 이괘는 빛[光]과 문화를 뜻한다. 중국 문화의 진수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빌딩 27층부터 90층까지 64개 층을 8개 층으로 묶어 솥[정·鼎] 모양으로 만들었다. 8개의 솥이 차곡차곡 위로 포개져 있는 모습이다. 8[파·八]은 재물의 번창[파차이·發財]을 뜻한다. 8개 층으로 된 솥이 8개가 있으니 ‘88′이 중복된다. 솥은 국가권력을 상징한다. 그 솥 8개가 중첩하여 올라가니 마디마디마다 흥한다[절절고승·節節高升]는 뜻이다. 네모 구멍이 뚫린 중국 옛날 돈을 형상화한 마스코트(mascot·길상물)를 외벽에 붙였다. 중국이 세계 최초로 돈을 주조한 국가였음을 알림과 동시에 돈 많이 벌라는 축원이다.

풍수 미학을 구현시킨 동력은 무엇일까? 건축가 리쭈위안(李祖原·1938~) 덕분이다. 대만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였다.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가능했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100층 건물을 짓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적 불명 건축물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에 첨단 과학과 전통문화를 녹여낼 한국의 ‘리쭈위안’을 기다린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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