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대재해법 논란은 계속
“로펌 낀 대기업만 피한다”
“영세업체가 법이 정하는 모든 안전관리 의무에 대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가뜩이나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으로 사업을 계속 운영하기 버거운 영세업체가 많은데, 추가 자원을 투입할 여력이 도저히 없다는 하소연이다.
사고 발생 이후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중소기업 취약성이 두드러진다. 현재까지 검찰이 수사를 마치고 기소 결정한 사건 38건 중 36건이 중소기업에서 일어났다. 현재까지 법원 1심 판결 이후 유죄가 인정된 곳 역시 모두 중소기업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대기업 경영책임자는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로펌이나 컨설팅 업체 자문을 거친 덕분”이라며 “반면 중소기업은 사전 대응은커녕 변호사 없이 재판에 참여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한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자는 힘을 모아 애로 사항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중소건설단체와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등 14개 단체가 경기 수원에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주최 측에선 집회에 중소건설인과 중소기업인이 4791명 모였다고 추산했다. 중소기업 대표가 수천 가까이 모인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1월 31일에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전국 3600명 중소기업인이 모여 법 유예를 호소한 바 있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중소기업계는 열 번이 넘게 성명을 발표해 법 적용 유예를 요청하고 수차례 국회를 찾아 준비 기간을 늘려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는 감옥 갈 위험을 안고 사업하느니 폐업하겠다는 실정”이라며 “법 준수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이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하겠다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2월 동안 충청·호남·영남권 등 광역단위별로 결의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확대 적용과 별개로, 법 자체 실효성이 있는지도 덩달아 도마 위에 올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난 2022년, 업무상 사고 사망자는 874명으로 전년보다 46명 더 늘었다. 지난해는 사망자가 줄기는 했다. 9월 누적 기준 사고 사망자는 590명으로 전년 동기(632명)보다 40명 가까이 감소했다. 단 중대재해법이 아닌 외부 요인 영향이 컸다는 얘기가 나온다. 건설 경기 불황으로 산업이 위축되면서 근로자 사고도 덩달아 줄어든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망 사고 발생 빈도가 높은 건설업 착공 면적이 40% 가까이 감소했다. 현장은 줄었는데 상대적으로 사고가 늘었으니 사망 재해율이 높아진 것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엄벌 중심의 입법에 대한 부작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본질인 산업재해 예방이 아닌 처벌만 강조되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이 갖고 있는 선언적인 효과도 없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인프라 등 구조적인 문제가 더 중요한데, 엄벌주의식 입법은 실질적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졸속 입법”이라고 평가했다.
법이 모호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중대재해법과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 데다, 동일 사고에 있어서도 책임을 지는 의무 주체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급업체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 두 법에서 규정하는 책임 주체가 다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도급업체를, 중대재해법에서는 원청인 사업주를 법 적용 대상으로 본다.
정해진 기준이 없다 보니 기업 안전관리자들이 현장 안전 정비보다 서류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이 예측 가능하고 이행이 가능해야 실질적인 안전 조치로 이어질 수가 있다. 아무리 준법 의지가 강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기업도 하는 척을 할 뿐인 상황인데 중소기업과 영세업체는 오죽하겠나”라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7호 (2024.02.21~2024.02.2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