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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병원 복귀할 생각 없다”지만…일부 전공의 사직서 낸 채로 환자 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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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면허정지 절차 돌입

대구 6개 병원서 103명 출근
부산대·고대안산병원 등
일부 사직자 정상근무도

대형병원 여전히 복귀 저조
장기 이식수술 올스톱 위기


매일경제

29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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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과라 수련과정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공의 공백이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은 분위기네요.”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 마취과에는 이날 오후 3시까지 단 한명의 전공의도 복귀하지 않았다. 정부가 이날까지 근무지에 돌아올 경우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전공의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앞서 세브란스병원 마취과 전공의 1~3년차 40명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간이식, 폐이식, 신장이식 수술이 계속 잡혀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며 “현재 병원에 남아있는 전공의 4년차 15명이 돌아가면서 오전에 출근했다 퇴근하는 식으로 업무를 겨우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련병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해 이날 일부 병동을 폐쇄했고 인턴 업무 중 일부를 대체할 간호사를 뽑겠다는 공지를 내렸다. 500명이 넘는 전공의가 소속돼있는 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관계자는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병원 전체로 봤을 때 한 십여명쯤 돌아왔을 순 있지만 이미 나간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시스템을 원상복구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상급종합병원의 한 교수는 “우리도 전공의들과 연락이 안돼 직접 설득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 갑갑한 상황”이라며 “면허 정지 등의 처분이 이들에겐 돌아올 유인이 못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반나절의 시간이 남았으니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방 수련병원의 전공의 복귀율은 의미 있는 수준까지 올라간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의료계의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경북대병원 본원 39명, 영남대병원 10명, 개명대 동산병원 41명 등 대구지역 전공의 103명이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지역 6개 수련병원 전공의 중에 사직서를 제출했던 전공의가 732명이었으니 복귀율이 15% 수준인 셈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사직서를 내고도 현장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전공의가 수십명에 달해 ‘실질 복귀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병원에 나와 일하는 경우가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중에서는 정부에 제출한 전공의 복귀 수는 한 자릿수이지만, 실제로는 사직서를 내고도 근무하는 전공의가 80명가량 되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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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한 관계자가 전공의 당직실을 지나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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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도 사직서를 낸 전공의 10여명이 병원에 출근해 환자들을 돌보고 있고, 경기 고대안산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대전 유성선병원도 사직서를 낸 일부 전공의가 정상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귀자가 하나둘 나오면서 복귀 절차등을 물어보는 전공의들도 늘고 있다. 전날 경기도의 한 대형병원에는 이탈한 전공의들의 문의 전화가 여러 건 이어졌다. 주로 다른 전공의들이 얼마나 복귀했는지, 제출한 사직서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국회 소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치료가 지연되고 이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소식 자체가 수술과 항암 등을 목전에 둔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좌절감으로 다가온다”며 “의사들이 환자들을 방치하고 병원을 떠나는 의료대란 사태가 정녕 대외적으로 의료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전공의의 이탈로 인한 의료계의 혼란만 보더라도 우리 의료계의 허약함과 구조적 문제, 더 나아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역대 회장 15명은 이날 ‘전공의와 정부에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병원과 재계약한다면 여러분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가치와 함께 이를 개선할 제도적 보완책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의사 노동자로서 노동 삼권을 보장받고, 의사 노동정책도 신설하도록 주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료대란이 장기화하면서 환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정부가 ‘중대 사안’으로 분류해 직접 조사에 나선 사례도 나왔다.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최근 임신부 한명이 이번 사태로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해 아기를 유산했다는 피해를 신고했다. 해당 여성은 ‘수술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헤매다 결국 유산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석 치료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나 의료진이 부족해 응급수술이 지연되면서 사망했다는 사례도 중대본에 접수됐다. 중대본 관계자는 “아기 유산과 투석치료·수술 지연에 따른 사망 사례 두 건은 중대한 사례로 분류해 즉각대응팀에서 살피고 있다”며 “두 사례가 첫 조사 대상이고, 오늘 조사에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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