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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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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배고플까 봐…” 7남매 맏이 고교생, 자전거 훔치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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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 인근에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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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밥 챙겨줄 생각에 서두르느라...”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자전거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7남매 맏이 고등학생의 사연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같은 사연은 고등학생이 직접 지구대를 찾아 절도 사실을 고백하면서 알려지게 됐고, 경찰과 지자체의 도움으로 이 고등학생 가족은 복지 지원을 받게 됐다.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일 고등학생 A군이 경기 오산경찰서 지구대를 찾아 자신이 자전거를 훔쳤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이틀 전인 18일 지구대 인근에서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쳐 갔다”는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다.

A군은 자전거를 절도한 이유에 대해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며 “잠시 빌려 타려고 한 것인데, 뒤늦게 다른 사람의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일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빨리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라고 했다.

또 A군은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A군의 사연을 접한 지구대는 사건을 상급 기관인 오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이관했고, 담당 경찰은 A군 진술에 나온 가정 형편에 주목했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6남 1녀의 다자녀 가정의 장남이었다. 부친은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모친은 심부전과 폐질환 등으로 투병 중이어서 A군이 중학생·초등학생·유치원생·생후 7개월 된 젖먹이 등 6명의 동생을 사실상 도맡아 돌봤다고 한다. 부모까지 합쳐 총 9명의 가족이 사는 곳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로, 주거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A군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 등 취약계층 대상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보유 등 차상위계층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A군 부친에 따르면, 다자녀 가정인 데다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잦아 차량이 꼭 필요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A군 가족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판단해 여러 차례의 가정 방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가정 형편을 조사했다.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자들과 합동으로 A군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한편 심리상담도 진행했다.

결국 오산시·오산경찰서·주민센터·청소년센터·보건소 등 7개 기관은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고 A군 가정에 여러 복지 지원을 하기로 했다. 우선 생활지원으로는 긴급복지지원(320만원×3개월), 가정후원물품(이불·라면 등), 급식비(30만원), 주거환경개선(주거지 소독), 자녀 의료비(30만원), 안경구입비(10만원) 등을 제공했다. 교육지원으로는 초·중등 자녀 3명에 대한 방과후 돌봄 제공, 중학생 자녀 대상 운동프로그램 제공 및 진로 상담을 진행했다. 주거지원으로는 기존 주택 매입임대제도(최대 8년 임대)를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절도 사건 자체는 즉결심판에 회부됐고, 법원은 A군에게 벌금 10만원에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즉결심판은 20만원 이하 벌금 등 경미한 범죄에 대해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는 약식재판으로 전과가 남지 않는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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