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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기고] 영국 정치사전엔 단수·전략공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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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우리의 253개보다 훨씬 많은 650개의 선거구에서 650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하고 있지만 잡음 없는 공천을 통해 민주주의를 한층 발전시켜왔다. 영국의 공천은 중앙집권적인 공천권 행사에서 벗어나 지역 자율성을 존중하고 경선의 원칙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역 자율적인 경선 원칙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다는 점에서 영국의 공천은 명실상부한 시스템 공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의 총선거 공천 작업은 지역 기구가 주체적으로 한다. 중앙권력의 정치적인 정성평가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보수당과 노동당의 공천 과정은 대동소이해, 1차 예비후보의 기본 검증(longlisting), 2차 컷오프(shortlisting), 3차 경선의 과정을 거친다.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2차 컷오프 과정부터 중앙당의 권력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 보수당은 지역에 위치한 선거구 보수당 협회에, 노동당도 지역 선거구 노동당에 2차, 3차 과정 운영의 전반적 권한을 위임해왔다.

영국 시스템 공천의 또 하나의 축은 예외 없는 경선이다. 특정 1인을 찍어 주는 단수공천 및 전략공천은 영국 정치사전에 없다. 보수당의 경우 일부 후보군에게 우대 조치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경선을 거쳐야 하는 우대 내용이다. 보수당은 ‘A-List’라는 명단을 발표한다. 이 리스트는 보수당 하원의원의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당의 혁신안으로서 주로 여성과 취약계층을 대표하는 100~150명의 우대 명단으로, 경선을 관할하는 지역 기구에 내려보낸다. 하지만 이 명단에 들어간 예비후보는 최종 경선 명단에 올라가는 우대를 받는 것이지 확정적인 1인 공천을 받는 것이 아니다.

현역 의원도 중앙당이 손들어주는 단수공천 따위는 없다. 현역 의원의 거취는 반드시 지역에서 이뤄지는 투표나 경선을 통해 결정된다. 보수당의 경우 현역 의원이 다음 선거에 출마하고 싶으면 지역 기구에 재공천을 신청한다. 이 기구는 재공천 여부를 투표로 결정한다. 만약 이 투표를 통해 재공천받지 못한 현역 의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것은 지역의 보수당 연합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우편투표, 다른 예비후보와의 경선이다. 노동당의 경우도 비슷하다. 현역 의원이 공천을 신청하면 지역 기구는 투표(trigger ballot)를 실시한다. 이 투표를 통해 공천을 줄 것인지 아니면 복수의 지원자가 참여하는 경선을 실시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예비후보가 현역 의원이든 아니든 투표나 경선을 거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정인에게 단수공천 및 전략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중앙권력이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의 이름으로 경선도 없이 특정인에게 공천장을 주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여야 공관위는 현재 현역 의원 단수공천 명단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또한 아나운서, 스타 강사, 스포츠 스타, 과학자 등이 포함된 수십명의 인재영입을 진행하고 이들에게 경선 없는 전략공천을 하기 시작했다.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의 취지는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내세워 당선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공천은 넓게 보아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에서 4년 동안 길게는 10년 이상 활동을 해온 정치지망생과 현역 의원의 헌신과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경선 없는 내리꽂기식의 공천을 하면서 시스템 공천 운운하는 모습은 가당치 않다.

특정 1인을 찍어 주는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은 시스템 공천의 관건인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해친다. 정치지망생에게 절망의 피눈물을 뿌리게 한다. 아울러 당내 최고 권력자가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현역 의원을 정치적으로 거세하는 역차별도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예외 없는 경선 원칙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송백석 영국 뉴캐슬대 정치학 박사·칼빈대 교수


송백석 영국 뉴캐슬대 정치학 박사·칼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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