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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권력이양 25년째 英 웨일스, 영주권 없어도 외국인 선거권 주는 이유[통신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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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세 납부 외국인 동등한 선거권 부여…정책 대상자"

2003년 여성 의원 비중 50% 도달…포용과 민주적 혁신 추구

뉴스1

영국 웨일스 카디프 베이에 있는 웨일스 의회 세네드(Senedd) 전경. ⓒ News1 조아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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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 웨일스가 정치적 권력이양을 쟁취하고 자체적인 입법기구를 가지게 된 것은 1999년부터다. 올해로 25년째다.

웨일스의 자치분권 요구는 1886년 자유진영 당파가 홈룰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젊은 웨일스라는 뜻을 가진 컴리 비드 운동을 추진한데서 정치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 발발과 아일랜드 독립 이후 자치권을 열망하는 목소리는 사그라지는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정부 간 겪는 이권 갈등이나 주요 의제에서 웨일스의 목소리가 축소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겹치자 불만은 쌓여갔다. 1980년과 1990년대 접어들면서 웨일스 자치정부 설립에 대한 지지도는 점점 높아졌다.

1997년 웨일스 노동당은 매니페스토 공약에 자치정부 수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다.

같은 해 7월에는 '웨일스의 목소리(A Voice of Wales)'라는 이름으로 백서가 발간됐고 약 2개월 뒤인 1997년 9월 18일 웨일스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두고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찬성 50.3%, 반대 49.7%. 겨우 6721표차로 근소한 차이였지만 역사는 이 때부터 큰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웨일스 담당 장관이었던 론 데이비스는 이를 두고 '사건이 아니라 과정(a process, not an event)'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지금도 웨일스가 독립적인 경찰권과 사법권을 이관해오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회자되곤 한다.

1998년 영국 의회는 웨일스 의회로 법적 기반을 이관하는 웨일스 정부법을 통과시켰고 웨일스 의회 세네드는 1999년 5월 12일 첫 발을 내디뎠다. 2002년에는 웨일스 내부에서도 행정부와 입법부 기능이 완전히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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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스 의회 세네드(Senedd) 본회의장 위에 있는 방청객 좌석 전경. ⓒ News1 조아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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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기관의 양성 평등 추구…의회 최초 구성 여성의원 40%

웨일스는 선진화된 입법 시스템과 민주적인 정치 제도를 추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개혁을 시도해왔다.

이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록 가운데 하나는 1999년 당시 웨일스 의회 세네드 의원 60명 가운데 24명을 여성 의원들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비율로 보자면 무려 40%에 달한다.

이때부터 남성 중심으로 지배됐던 웨일스 정치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003년 세네드는 여성 의원 30명, 남성 의원 30명으로 성비균형을 완벽하게 달성한 세계 최초의 입법부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여성 의원이 31명으로 과반수를 넘겼고 이후에는 소폭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4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5일(현지시간) 기준 웨일스 의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21년도 웨일스 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 결과 전체 60석 가운데 여성의원 26석으로 43%를 차지했다.
현재 영국 하원의원 전체 인원 647명 가운데 225명으로 여성 의원이 34.7% 인 것과 비교해도 꽤 높은 편이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0%대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과도 비교되는 수치다.

2022년 기준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 의원은 전체의 19.1%에 불과하다. 1999년 웨일스 의회가 여성의원들을 40% 비율로 구성했던 동일한 연도 수치를 살펴보면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은 겨우 3.7%였다. 10배가 넘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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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스 의회 세네드(Senedd) 건물의 중심에 있는 대형 원형 토론실. 주요 회의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웨일스어로는 샴브르(Siambr)라고 읽는다. ⓒ News1 조아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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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의원 선출 외국인 투표권 문턱 낮춰…합법 거주자 누구든지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웨일스에서는 의회 의원 선출과 지자체 선거에 대한 외국인 선거권을 폭넓게 인정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도 이 같은 진보적 행보에 맥락을 같이한다.

웨일스에 사는 외국인은 영주권이 없어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자격만 있다면 16세 이상 누구나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나서도 3년이 지난 외국인에게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영국 총선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올해 1월 기준 영국의회 하원도서관이 발표한 연구자료를 살펴보면 현재 영국 총선은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잉글랜드는 경찰 및 범죄위원, 선출직 시장, 행정교구 선거에서 유럽연합(EU) 시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

반면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입법기관 의원과 각 지역평의회 의원들을 선출할 때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거권을 인정한다.

웨일스의 경우 경찰 및 범죄위원 선거에 대한 결정권한은 영국 중앙정부에 있기 때문에 관련 기준에 따라 EU 시민으로 제한한다.

웨일스가 외국인 선거권 문턱을 낮춘 배경에는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다양성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지만 영국 총선보다 비교적 떨어지는 웨일스 선거 투표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2019년 기준 영국 총선 선거에 참여한 웨일스 투표율은 67%를 기록했지만 2021년 실시된 웨일스 세네드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 투표율은 47%에 그쳤다.

또한 국가나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웨일스 주민들이 '평등한 권리'를 실현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젊은 층의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지난달 17일 웨일스 의회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발간한 보고서는 민주적 혁신을 위해 '다중형식', '포용적이고 심의적인', '역량 강화와 결과로 이어지는' 등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올리버 에스코바 에든버러 대학교 공공정책과 민주혁신 교수가 제안한 3가지 요소이기도 하다.

웨일스 정부 법률 자문 총괄을 겸직하고 있는 믹 안토니우 세네드 의원은 "웨일스에 거주하면서 지방세를 납부하는 모든 외국인은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다"며 "그들은 웨일스에 장기적으로 거주할 가능성이 높고, 웨일스의 다양한 정책 적용을 받는 직접적인 대상자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세네드는 웨일스 국민의 대표 역량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다가오는 2026년 선거에 앞서 의석 규모를 기존 60석에서 96석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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