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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박근혜 “정치 않겠지만, 뭐든 해서 국민께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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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일 대구시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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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저자와의 대화’가 열린 대구 인터불고 호텔 만촌 컨벤션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든 800여 명의 청중으로 가득 찼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1일 대구 동화사를 방문하고, 9월 25일 대구 현풍시장을 찾는 등 외부활동을 조금씩 늘려왔지만 대규모 행사에서 국민과 직접 마주한 것은 사면·복권 이후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승리한 2012년부터 특별사면으로 대구시 달성 사저로 복귀한 2022년 3월 이후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담았다.

그는 “유일하게 헌정사에 탄핵으로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재임 시절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 개입 의혹 사태와 이어진 탄핵과 수감생활에 대해 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을 드린 것이 저를 힘들게 했다”며 “하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해 담담히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일곱 시간 의혹 등 각종 루머에 대해선 “주로 성(性)적인 것과 관련된 루머였다”며 “아마 제가 미혼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법적인 조치도 생각했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대응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외교 사안에 대한 기억도 떠올렸다. 박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부단히 힘을 썼다”며 “하지만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했고, 국가 수호와 국민 보호가 대통령의 최고 책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에 대해 그는 “이 문제를 미래 세대에게 넘기면 해결하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조금 아쉬움이 있더라도 결단을 내려야 했고, 지금 생각해도 합의는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폐기한 것에 대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 정부와 다른 방향으로 갔다”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는 우리 안보를 위해 필요했고, 동맹국인 미국도 강력히 요청했다”며 “탄핵을 앞둔 2016년 11월 제 소임을 다해 협정을 맺고 감옥에 가서 안도했다”고 회고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허원제 전 수석과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와 박 전 대통령의 대담도 진행됐다. 행사장에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형표·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민봉 전 국정기획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 박근혜 정부 인사들과 정갑윤 국민의힘 상임고문, 서상기·김동주·백승주 전 의원 등도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화환을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저는 정치 일선을 떠났고, 정치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해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손국희·백경서 기자 9key@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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