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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증거가 부족” “밑에서 알아서”… 임종헌 혐의가 양승태까지 안 이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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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1심 판결문 분석]
임종헌·이규진 일부유죄 인정에도 무죄
관련 보고서 등 있으나 "혐의입증 부족"
임종헌 증언 거부에 검찰 조서도 못 써
이규진 진술 번복은 양승태 힘 실어줘
한국일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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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

"핵심 증인이 증언을 거부했다."

"증인이 법정에 이르러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살펴본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는 양 전 대법원장 하급자인 이규진 전 상임위원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봤다. 그럼에도 △증거 부족 △증언 거부 △진술 번복 등의 이유를 들며 그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행정처장)의 공범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이렇게 판단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법원조직법상 사법행정을 총괄·지휘·감독하는 대법원장 △사법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법원행정처장(현직 대법관)을 빼고, 행정처장을 '보좌'하도록 되어 있는 행정처 차장이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구도가 돼 버렸다.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등과 실무 책임자 간의 공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4단계 접근법을 택했다. ①임 전 차장과 이 전 상임위원 등이 각종 혐의와 관련해 직무 권한이 있는지 ②직무 권한을 남용했는지 ③남용으로 인해 타인이 의무 없는 일을 했거나 타인의 권리가 방해됐는지 ④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지시 또는 가담했는지 등을 순서대로 판단했다. ③의 단계까지 인정이 되면 임 전 차장 또는 이 전 상임위원의 죄는 성립된 것으로 봤고, ④까지 '그렇다'는 결론이 나와야 대법원 수뇌부의 공모가 인정되는 구조다.

재판부가 임 전 차장 또는 이 전 상임위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인정한 대목은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일부 재판 개입 △파견 법관을 이용한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및 동향 수집 △국제인권법 연구회 와해 시도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양 전 대법원장과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이유는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전 상임위원이 2015년 문성호 전 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이석기 등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1심 판결의 문제점과 대책을 담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건 유죄라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등은 문 전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받았을 뿐, 보고서의 작성에 가담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물증이 있긴 했지만 공모를 입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판단도 있다. 헌재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관의 보고서를 수집하도록 지시한 혐의와 관련, 헌재의 위상 강화를 우려하는 취지의 2013년 행정처 문건이 증거로 제출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거나 보고받은 증거가 없다"며 "행정처에 헌재의 위상 강화로 대법원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이러한 분위기와 일치하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핵심 연루자 진술도 혐의 뒷받침 실패

한국일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7월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검찰 압수수색을 받는 도중 집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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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연루자들의 진술 등 간접 증거도 양 전 대법원장 혐의를 입증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특히 수뇌부와 일선 법관들을 연결하는 '키맨' 역할을 한 임 전 차장이 "제 형사재판에 관련이 있다"며 증언을 전부 거부한 게 결정타였다. 현행법상 피고인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 사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증인이 증언으로 나서 진정 성립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이 모든 증언을 거부하는 바람에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검찰 진술은 단 하나도 유죄의 근거로 삼을 수 없었다. 당시 사법부 최고 엘리트로 불렸던 임 전 차장 등이 검찰 확보 진술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런 전략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그의 증언 거부로 연루된 다른 법관들 진술의 신빙성 또한 비교·분석이 어려워지기까지 했다.

임 전 차장의 진술 거부가 특히 영향을 끼친 대목은 2016년과 2017년 국제인권법 연구회 및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시도 혐의였다. 이 혐의의 구조는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보고서 작성 등을 지시했다"는 것으로 임 전 차장이 입을 열지 않으면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하다. 결국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일부 보고서 등을 보고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임 전 차장으로부터 보고서 작성 지시를 받은 박상언 전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의 검찰·법정 진술 등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전 상임위원의 진술 번복도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파견 법관을 통한 헌재 재판관 보고서 수집 지시 의혹과 관련해 2018년 검찰 조사에서 "헌재의 내부 정보를 최대한 입수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을 했고 이는 양승태, 박병대, 고영한의 지시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그러나 2020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지시를 정확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이 전 상임위원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말을 그대로 기억해 검찰에서 진술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용어로 바꿔 진술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상임위원이 검찰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 연구회는 내 임기 중에 정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법정에선 "해당 발언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뒤집은 점 등도 반영해 무죄를 썼다.

재판부는 일부 혐의는 임 전 차장과 이 전 상임위원이 알아서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임 전 차장이 박 전 심의관에게 2017년 1월 인사모 관련 대응방안 검토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와 관련해 "임 전 차장 등이 국제 인권법 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 개최로 인한 파급력 등을 우려해, 개최와 관련이 있는 이탄희(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게 연락해 행정처의 우려사항 전달 등을 요청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증명 부족일 뿐... 문제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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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걸(왼쪽 사진)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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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판부가 무죄로 봤지만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유효하다. 행정처 근무경험이 있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아랫사람이 얘기 안 해도 알아서 해야지'라는 양 전 대법원장 스타일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증거가 남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형사적으로 증명이 안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진짜로 몰랐거나 실제 알고도 묵인했거나 그 사이에 진실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라며 "재판 개입 등 문제가 없었다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항소심에서의 반전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증언을 거부했지만, 임 전 차장 본인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다면 그의 1심 판결 결과를 검찰이 항소심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특히 임 전 차장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모를 인정한다면 항소심 국면은 달라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임 전 차장 재판의 1심 선고는 내달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 심리로 열린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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