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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교실 지키는 ‘등불’… 초등학교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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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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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사들은 2023년 울분을 삼키며 한 해를 보냈다. 올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젊은 교사가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는 일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게 발단이었다.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떠난 다른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속속 드러났다. 도를 넘은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교권 추락 실태 앞에서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고, 동료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전국 교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제가 열린 올 9월 4일에는 10만 명이 넘는 교사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등에 모여 교권보호법 제정을 요구했다. 결국 국회는 입법으로 응답했다. 2024년 새해를 앞두고 이달 28일 경기 화성시 예원초에서 만난 왕후승 교사(36)는 “법이 바뀌었다고 현실이 갑자기 좋아질 것이라고 보진 않지만 우리를 믿고 따르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 교단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바둑돌 시위’로 국회 움직여… 교사들 “아이들 위해 교단 지킬것”


초등교사, 본보 선정 올해의 인물
서이초 계기 교권 추락 민낯 드러나
“정당한 교육활동 보장해달라”… 교사들, 11차례 장외집회 열어
“학생-학부모-교사 존중하는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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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 화성시 예원초 교실에 모인 임세봉 박효천 정수경 왕후승 교사(왼쪽부터). 이들은 “힘든 일이 많았던 올해지만 많은 동료 교사의 노력과 국민 지지 덕분에 학교가 변하고 있다”며 “새해에는 즐거움만 꽃피는 교실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 선정 소식을 접하고 인터뷰를 위해 왕 교사가 다니는 학교에 모였다. 칠판에 그려진 건 예원초 6학년 김민서 김하율 마예현 석윤하 최소민 양이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표현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을 받고 그린 그림이다. 화성=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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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폭행하는 학생, 교사에게 ‘소송하겠다’며 협박하는 학부모, 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학부모 단톡방….

올해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교권 추락의 현실은 참담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2023년 교사들은 ‘을(乙) 중의 을’로 전락해 있었다. 학생들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거부했고, 학부모는 작은 일만 생겨도 아동학대 혐의로 교사를 신고했다. 일부 학교장들은 교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당신이 참으라’며 사안을 덮기에 바빴다. 결국 교사들은 거리로 나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외쳤다.

● 정부와 국회 움직인 ‘바둑돌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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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기 화성시 예원초 교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임세봉 청원초 교사(34)는 “서이초 사건을 접한 뒤 초등교사라면 누구나 자신을 힘들게 했던 학부모 얼굴이 떠올라 잠을 못 이뤘을 것”이라며 “저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또 “현실이 불합리해도 ‘묵묵히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됐다”고 했다.

임 교사처럼 ‘더는 참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교사들은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7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10월까지 11차례 광화문과 여의도를 오가며 집회를 열었다.

현직 교사들이 장기간 대규모 거리 집회에 나선 건 처음이었다. 시위 당시 ‘바둑돌’처럼 질서정연하게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두고 “시위를 해도 선생님은 역시 선생님”이란 말도 나왔다.

이들의 요구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단 한 가지였다. 숨진 서이초 교사는 올해 초부터 담임을 맡은 학급의 문제 학생을 힘들어 했고, 해당 반에서 학교폭력 사건도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교사는 부장교사와의 상담에서 “학부모가 개인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해 놀랐고 소름이 끼쳤다”고도 했다.

9월 4일에는 사상 초유의 ‘공교육 멈춤의 날’이 선포됐고 전국에서 10만 명 이상(주최 측 추산)의 교사가 거리로 나왔다. 당시 교육부는 “수업에 빠지면 중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지시하자 징계 방침을 백지화했다. 이후 국회는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인 9월 21일 ‘교권 보호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을 처리했다. 2학기부터 일선 초중고교에서 교육부의 교권보호 고시도 시행됐다.

● “아이들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교단 지켜”

교권 추락 사태로 일부 교사는 교단을 떠났고, 일부 교대생은 교사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여전히 교단을 지키고 있다. 박효천 태평초 교사(42)는 “그래도 역시 아이가 잘되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부모님과 선생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고 교실이 붕괴되면 가장 힘없고 약한 아이들이 상처를 입는다”며 “그런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교직에 남고 싶다”고 했다.

초교 6학년생의 학부모인 동시에 경기 양주시 옥빛초 교사인 정수경 씨(41)는 “교실에는 금쪽이부터 은쪽이, 동쪽이, 납쪽이 등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는 극소수”라며 “사건 이후 사소한 민원이 조금씩 줄었다는 동료 교사의 말이 들려오고 있다”고 했다. 또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며 “악성민원은 통용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교실도 달라질 수 있다”며 강조했다.

교사들은 2024년 새해에는 변화된 학교에서 마음껏 교육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왕 교사는 “지금은 교사들이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악성 민원이 접수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며 “교사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떨지 않고 교육에 헌신할 수 있게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학교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성=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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