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 완화에
“종이컵 대량주문”·“다시 플라스틱 빨대로”
원점으로 되돌아간 카페·식당들
종이빨대 업체도 위기 심화돼…“매출 90%↓”
지난달 7일 정부가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임세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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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유리컵이요? 싹 다 팔아버리고 원래 쓰던 종이컵으로 ‘백(back)’ 했죠.”
서울 양천구에서 한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A(38) 씨가 말했다. A씨는 지난 10월 말 일회용품 사용 규제 계도 기한이 종료되는 것을 대비해 유리컵 30개를 주문했다. 그동안 A씨의 카페에서 물 마실 때 쓰는 컵은 일회용 종이컵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뒤집자, A씨는 주문해뒀던 유리컵 30개를 모두 중고거래에 내놓았다. A씨는 “유리컵 팔고 받은 돈 보태서 최근에 종이컵을 다시 대량 주문했다”며 “유리컵 개수는 몇 개 안 돼 보여도 종이컵 쓸 때랑 비교하면 하루 설거지 양엔 꽤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철회’ 방침이 한 달여 지난 시점. 다회용기를 되팔고 일회용품을 재구입하거나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카페와 식당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회용기를 세척하는 부담이 큰 데다 종이 빨대보다 플라스틱 빨대 등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돼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한 달만에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환경부는 지난달 7일 카페와 식당을 비롯한 식품접객업소 등에서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처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두 품목을 포함하고 계도기간을 운영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규제를 뒤집은 것이다. 이에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포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A씨는 “환경만 생각하면 종이컵 안 쓰는 게 백 번 맞다”면서도 “한창 사람들 몰리고 바쁜데 유리컵 설거지까지 쌓여 있으면 답답하고 속도가 안 나서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개인 카페에서 일하는 김모(47) 씨는 최근 포장 뜯은 종이 빨대를 다 쓰고 플라스틱 빨대를 구매했다고 했다. 김씨는 “플라스틱 빨대가 500개에 2000원 정도라면, 종이 빨대는 200개에 3000원 정도 한다”라며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3배 이상 비싸 가격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브런치카페를 운영하는 신모(43) 씨는 “정말 엄청나게 환경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지 같은 일회용품을 쓸 것”이라며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게 가격도 가격이지만 간편하고 빨라 효율적”이라고 했다. 신씨는 다회용기 사용으로 식기세척기를 구비하거나 설거지 인력을 추가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 정책을 믿고 종이 빨대 생산에 뛰어든 기업들의 위기는 심화하고 있다. 이상훈 종이빨대 판매법인 대표는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발표 이후 종이 빨대 업계의 매출이 90% 정도 줄었다”며 “특히 일반 소매상이나 소상공인 카페와 베이커리를 영업 대상으로 준비하던 종이 빨대 기업들은 고정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4~5년 동안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철회하면서 친환경 제품 판로를 막았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지난달 20일 뒤늦게 소상공인과 간담회를 열고 경영애로자금 등 매출이 줄어든 일회용품 대체품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지원 방안을 제안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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