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부 끝났습니다." (A 은행)
"탁상용은 없고, 벽걸이형만 있습니다." (B 은행)
"13일부터 드립니다." (C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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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근처 시중은행 세 곳을 돌아다녔으나 달력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달력이 모두 소진된 곳도 있었고, 아직 배부를 시작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달력이 있어도 인기 있는 종류는 구하기 어려웠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달 초중순부터 달력을 나눠줬다. '벽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연말이 되면 은행 영업점에는 은행 달력을 찾는 고객이 몰린다.
은행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실천과 수요 감소 등을 이유로 매년 달력 발행 부수를 줄이면서 은행 달력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달력을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영업 시작 전부터 줄 서서 기다리거나, 중고거래로 달력을 사고팔기도 한다. 일부 은행에서는 앱을 통해 달력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달력 배부 시점과 기준은 은행 영업점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1~12월부터 배포를 시작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본사 차원의 달력 배부 지침은 없다"며 "영업점의 규모, 고객 수 등에 따라 수량을 다르게 배포하고, 각 영업점에서 재량껏 고객에게 나눠준다"고 설명했다. 해당 관계자는 "큰 영업점일수록 할당된 수량이 많다"며 "배부 기준은 지점마다 다르다. 은행 거래 고객에게만 달력을 주는 지점도 있고, 거래가 없는 고객에게도 달력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40대 이 모씨는 "달력 배부를 시작한 지 약 2주 만에 재고가 소진됐다"며 "여의도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아 달력 수요가 높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해당 영업점에서는 거래가 없어도 달력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달력을 나눠줬다. 그에 따르면 달력을 찾는 고객은 주로 회사에서 달력을 받지 못한 직장인, 지역 주민, 인근 상가 상인 등이었다.
근처의 다른 시중은행에서 달력을 배부하는 청원경찰 조 모씨(28) "기업 고객과 개인 고객별로 할당된 달력의 수량이 다르다"며 해당 영업점의 경우 "개인 고객에게는 총 100~200부 정도를 제공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젊은 고객은 탁상용 달력을 선호하고, 고령층 고객은 벽걸이형을 많이 찾는다"며 "직장인 고객이 많은 영업점의 특성상 탁상용 달력이 먼저 소진됐다"고 전했다.
아직 배부를 시작하지 않은 또 다른 시중은행의 직원 허 모씨(32)는 "영업점마다 배부 일시나 방법, 수량 등이 다르다"며 "달력을 찾는 연령대는 30대부터 6~70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지인들에게 은행 달력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냐고 묻자 "최근 달력을 잘 쓰지 않는 추세인데다 각 회사에서 달력을 나눠주기 때문에 굳이 은행에서 달력을 구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허 씨는 "'은행 달력이 금전운을 부른다'는 이유로 달력을 찾는 또래 지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은행 영업점에서 만난 고객 조 모씨(28)도 은행 달력에 관한 속설을 듣고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 씨는 "달력을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은행에서 굳이 달력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친구들뿐 아니라 부모님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기자보다 먼저 은행에 방문해 달력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던 김 모씨(80)는 은행 달력을 찾는 이유를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달력을 얻기 위해 근처 은행 두 곳을 돌다 세 번째로 해당 지점을 방문했지만 아직 배부를 시작하지 않아 또 허탕을 쳤다. 김 씨는 "다른 은행의 달력보다 글씨가 크고 보기 편해서 매년 이 은행의 달력을 쓴다"며 "'은행 달력을 집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시중은행의 달력 발행 부수는 매해 줄어드는 추세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올해 달력을 약 636만부 만들었다. 790만부 정도를 제작했던 지난 2019년보다 20% 가량 떨어진 수치다. 최근 은행이 ESG 경영을 강화하고 종이 사용을 줄이면서 종이 달력 발행량도 감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바일 달력 사용이 늘면서 고객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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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종이 달력 발행 부수를 줄이고 있지만, 중고거래로도 팔릴 만큼 은행 달력의 인기는 여전하다. 한 포털사이트에 '은행 달력'을 검색하면 2024년 달력을 중고거래하는 게시물이 6일 기준 약 80건 정도 나온다. 가격도 3000원에서 16000원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아 달력을 제공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10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하나원큐 앱에서 2024년 달력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다. 지난해 말에는 하나원큐를 통해 한 달 동안 매일 3000부씩 한정판 달력을 선착순 배포했다. KB국민은행도 작년 12월 KB스타뱅킹 앱에서 2023년 달력 신청자를 받고, 1만명을 추첨해 달력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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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우리 원(WON)뱅킹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2024년 달력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 원뱅킹에서 달력을 신청한 고객 중 5000명을 뽑아 2024 탁상용 캘린더 2부씩을 배송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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