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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접경이 불안하다 [김연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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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군사합의는 적극적으로는 완충 공간에서의 신뢰 구축을 의미하지만, 소극적으로는 정전협정의 복원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전투원, 초소, 화력을 비운 완충 공간이다. 윤석열 정부가 다시 감시초소를 설치하고, 중무장지대로 전환한 것은 9·19 군사합의 파기이면서 동시에 정전협정의 파기다.

한겨레

2019년 5월22일 시민들이 강원 철원군 ‘디엠제트(DMZ) 평화의 길’내 공작새 능선 조망대에 올라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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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윤석열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먼저 파기했다. 어차피 깨질 합의인데, 누가 먼저 파기했는지가 의미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북한이 합의를 어긴 적은 많지만, 남한이 먼저 합의를 공개적으로 파기한 적은 처음이다. 국가도 신용이 있는데, 앞으로 누가 믿겠는가? 접경이 불안해졌고, 안보가 위태로워졌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견해차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군사모험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간접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한쪽에서 전쟁하는 동안 새로운 전선의 확대를 피하려 한다. 대만해협에 이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군사 전략으로도 복잡해지고, 국방 예산을 늘리기도 어렵고, 국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전협정에 대한 견해차다. 9·19 군사합의는 적극적으로는 완충 공간에서의 신뢰 구축을 의미하지만, 소극적으로는 정전협정의 복원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전투원, 초소, 화력을 비운 완충 공간이다. 비무장지대는 대결 시대를 거치며, 중무장지대로 전환됐다. 9·19 군사합의에서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를 철거한 것은 사실은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정전협정의 복원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다시 감시초소를 설치하고, 중무장지대로 전환한 것은 9·19 군사합의 파기이면서 동시에 정전협정의 파기다.

사실상 비무장지대의 관리를 한국군이 맡고 있지만, 법적인 권한은 미군 중심의 유엔사가 행사한다. 유엔사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정전협정의 준수에 둔다. 실제로 9·19 군사합의 이후 정전협정 위반 사례는 거의 사라졌는데, 앞으로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정전협정 준수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의견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완충 공간이 사라지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커진다. 50년 이상 이어져온 핫라인이 불통인 상황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과연 확전을 멈출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병력자원 부족이라는 현실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그동안 추진해온 과학적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 군사국가 북한을 상대로 전쟁 불사를 외치는 무모함을 이해하기 어렵다.

접경의 긴장이 높아졌다. 전방은 비무장지대와 서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퇴 어장같이 멀리 떨어진 공간도 전방이다. 근해 어족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동해안의 많은 어선이 기름값과 선원 인건비를 고려해 대화퇴를 찾아 공격적인 어로 활동을 한다.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까지 경제수역이 겹치는 이곳에서 우리 어선이 북한에 의해 나포되기도 했다. 어민 안전을 보장할 방안이 있는가?

접경지역의 삶도 어두워졌다. 평화로울 때는 접경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달라진다. 특히 인천과 경기는 대도시들이 접경에 인접해 있다. 긴장이 높아지면 당장 관광객이 오지 않고, 재산 가치도 떨어진다. 접경지역에서는 곧 ‘평화가 경제’다. 안보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뜻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9·19 군사합의 파기는 윤석열 정부의 예고된 이념이었다.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북풍이 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실패하고 오히려 역풍이 불었는지 알아야 한다.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불안이 아니라 안전을 원하고, 무능한 정부가 아니라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 나아가 정파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불순한 의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 되는 해다.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비무장지대에서 병사들의 혼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대의 사명을 망각하고, 왜 새로운 비극을 만들려 하는가?

그동안 전쟁 근처까지 가더라도 자제력을 발휘해 고비를 여러번 넘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계 질서가 변하고, 남북한 무장 수준이 달라졌다.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악화할 것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조차도 안보 이데올로기에 휩쓸리기 쉬운 시절이다. 분명한 것은, 안보를 강화할수록 안보가 위험해지는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화를 지킬 능력이 없으면 안보는 불안해지고, 평화를 만들 의지가 없으면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로 공멸을 멈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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