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건설 시장은 현장 작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작업자들이 모여 땅을 파고,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식으로 건물을 짓고 주택을 공급했다.
반면 최근 건설사들이 제시하는 모듈러 주택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현장에서 건물을 완성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공장에서 전기배선, 배관, 욕실, 주방, 온돌 등 집 구조의 70~80% 이상이 갖춰진 모듈 유닛(Unit)을 제작한다. 이후 해당 모듈을 현장에 옮겨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조립식 주택이다.
주중에는 도시, 주말에는 시골에서 보내는 이른바 ‘5도 2촌’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국내에도 모듈러 주택 시장이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DL이앤씨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형 단지’를 준공했다고 밝혔다.
대형 건설사도 뛰어든 모듈러 주택
DL이앤씨 타운형 모듈러 단지 준공
구례 모듈러 주택 단지는 연면적 2347.6㎡ 부지에 다락방을 포함한 지상 1층 단독주택(전용면적 74㎡) 26가구로 구성됐다.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사업으로 지난해 6월 착공해 최근 준공했다. 공사 기간은 총 1년 4개월. 이 중 부지 조성 공사만 8개월, 공장에서 유닛을 제작하는 기간은 약 3개월이 걸렸다. 유닛을 옮겨 설치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모듈러 주택 1가구를 짓는 것은 하루 정도 걸려, 26개동은 한 달 만에 완성됐다. 이후 조경, 마감 공사 등을 거쳐 모듈러 타운이 완성됐다. 현재는 입주를 시작한 상태다.
DL이앤씨는 총 11개의 철골 모듈러 유닛을 조합해 하나의 주택을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해 단독주택을 구현했다.
DL이앤씨는 2017년부터 모듈러 주택 기술 개발에 들어가 약 40건의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구례 모듈러 주택 단지에는 ‘유닛 조합 설계’와 ‘무용접 커넥터’ ‘무하지 외장 접합 시스템’ 등 자체 특허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이를 통해 국내 단독주택 환경에 맞는 모듈러 설계·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산성을 개선했다는 것이 DL이앤씨 측 설명이다. 지금까지 모듈러 주택은 운송부터 설치, 접합, 마감 등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하나의 유닛만을 활용해 소형 주택(원룸, 기숙사 등)을 제작하는 데 활용했다. 반면 이번 모듈러 주택은 방(3개), 화장실(2개), 주방, 거실, 다락, 세탁실, 베란다 등으로 구성됐다. 3~4인 가구가 충분히 지낼 수 있을 정도다.
구례 모듈러 주택 준공을 시작으로 DL이앤씨는 다양한 기술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재 DL이앤씨는 소비자들이 모듈러 유닛을 마음대로 골라 원하는 평면을 계획할 수 있는 ‘멀티 커넥션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주방과 거실, 침실 등 고객이 원하는 유닛을 마치 레고처럼 선택하고 조립해 배치하는 게 가능하다. 선룸이나 스파 같은 특별한 옵션도 고객 맞춤형으로 설치할 수 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모듈러 주택은 기존 주택 대비 생산성과 시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경제적일 뿐 아니라 친환경 시공으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라며 “구례 모듈러 단독주택 타운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품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DL이앤씨가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준공한 국내 최초의 ‘타운형 모듈러 단독주택 단지’ 모습. (DL이앤씨 제공) |
모듈러 주택 장점은
균일한 품질의 주택 기대
모듈러 주택은 기본적으로 건축물 각 유닛을 공장에서 사전에 생산한 뒤 이를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는 방식이다. 현장 작업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공사 기간을 최대 50%까지 단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숙련된 인력의 필요성이 적어 균일한 품질을 기대할 수 있다. 공사 과정에서 탄소와 폐기물 배출량을 줄일 수 있고 분진과 소음이 적어 친환경 공법으로도 주목받는다.
공사장 주변 소음과 분진 피해도 적고, 정확한 예측을 통해 재료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최근 건설 현장 붕괴·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후 대안으로도 모듈러 주택이 주목받는다. 모듈러 건축 공법을 활용하면 기존 공법 대비 탄소 배출을 30% 이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 일본 등 해외에서는 조금씩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듈러 주택 건설 시장은 지난해 기준 193조원 규모에 이른다. 2032년까지 약 37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에서는 2003년 모듈러 학교 시범 건립 사업으로 처음 도입됐다. 포스코그룹이 2003년 신기초 부속동을 지은 것이 최초였다. 하지만 원가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확장되지 못했다. 그러다 세계적으로 모듈러 주택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2020년 전후 국내 건설사들도 적극 뛰어들기 시작했다. 삼성물산, GS건설 등 주요 대형 건설사는 잇따라 모듈러 주택을 신사업으로 정하고 다양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정부 또한 모듈러 주택 공급에 발 벗고 나서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는 2030년까지 연간 3000가구의 모듈러 주택을 공공 발주한다는 계획이다.
대형 건설사와 정부 등이 모듈러 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완전 대중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과제도 여럿 있다.
무엇보다 비용이 문제다. 아직은 기존 철근 콘크리트 공법과 비교하면 기본적인 공사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환금성이 낮다는 점 역시 단점으로 꼽힌다. 비용 대비 수요가 많지 않고 아파트처럼 정형화된 시장 가격이 없다. 투자 상품으로서 가치를 매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출 등을 받기도 쉽지 않다.
모듈러 주택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관심사는 바로 주택 수에 포함되는지다. 최근 몇 년 동안 시골 농장에 농막처럼 이동식 주택을 짓고 주말마다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농막 주택처럼 모듈러 주택을 가설 건축물(임시로 건축해 제한된 기간만 사용하는 건물)로 등록해 사용할 수 있다면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 면적이나 크기 등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활용폭이 줄어든다. 반면 특정 장소에 모듈러 주택을 설치하면서 토지의 지목(토지의 주된 사용 목적에 따라 토지의 종류를 구분·표시하는 명칭) 변경이 이뤄진다면 주택 수에 포함될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모듈러 주택은 과거에는 단열·결로 등의 문제로 대중화에 한계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시공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공법이 개발되면서 이런 단점이 조금씩 보완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전원주택이나 세컨드 하우스 혹은 귀농·귀촌을 위한 용도로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5호 (2023.11.22~2023.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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