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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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더 미루자는 것은 정부가 국민 안전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겠다는 이야기다.”
산업재해 피해자 유가족과 노동계가 22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중소기업' 적용 유예를 연장하려는 정부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처법은 부칙에 따라 내년 1월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될 예정인데, 정부는 "기업 준비가 부족하다"며 부칙 개정 등을 통해 일정을 미루려는 방침이다. 노동계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산재 피해자 유가족과 노동단체들이 모인 ‘중처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대재해를 감독도, 수사도, 처벌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며 “중처법 적용 유예 연장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국민 보호 책무를 저버린다면 반드시 국민들의 응징이 뒤따를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김용균재단 대표), 방송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등이 참석했다.
공사 현장 바닥에 노동자의 안전모가 떨어져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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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공포돼 지난해 1월 시행된 중처법은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를 처벌하는 법이다. 상시근로자 5명 이상 사업장은 모두 적용받는 법이지만, 부칙을 통해 근로자 50명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사업장에는 '준비할 시간'을 준다는 취지로 법 공포 후 3년 유예기간을 뒀다. 정부는 이 유예기간을 2년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도 아직 중처법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대비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산업계 요청을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대재해 태반이 중소기업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874명 가운데 707명(81%)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김미숙 대표는 “지난 3년 동안 50인 미만 사업장에 안전조치를 취할 시간을 줬지만 아무것도 안 했다"며 "이들에게 시간을 더 준다고 변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중처법 적용 유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현철씨는 “지게차에 후미등이 없어서, 회전하는 롤러에 방호망을 달지 않아서, 안전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서, 현장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살 수 있는 생명이 정말 어이없게 죽어간다”며 “(기업들이) 중처법 적용을 유보해 달라는 것은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이며, 노동부나 사법부도 역할을 방기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다만 국회도 '기업 목소리'에 응답하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처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계류돼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중처법 유예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홍익표 원내대표)는 태도다. 국회 법사위는 이르면 오는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중처법 유예 연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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