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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파출소장 갑질’ 폭로한 경찰관에 “왜 형사 점퍼 입냐” 징계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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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성 징계’ 비판

한겨레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로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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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지역 유지에 대한 접대 강요 등 파출소장의 ‘갑질’을 폭로한 여성 경찰관이 복장 불량 등을 이유로 도리어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경찰 내부에선 문제를 제기한 경찰관을 상대로 한 ‘보복성 징계’가 계속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파출소장의 갑질을 폭로했던 박인아 서울 성동경찰서 경위는 최근 서울경찰청이 감찰 결과 사복 착용 등 비위 사실이 인정된다며 경찰서 징계위원회에 넘기라는 취지의 통지서를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통지서에는 사복 착용, 유연 근무 출퇴근 미등록, 출장비 부당수령, 부적절 언행, 정당한 지시 불이행, 근무시간 공부, 관리팀 업무 소홀 등 7가지 항목에서 민원인·동료 팀원들의 진술을 확인했다며 비위가 인정된다는 조사 결과가 기재됐다. 특근매식비 잘못 지급, 초과근무 부당수령, 표창 상신 미보고 등 3가지는 비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며 인정되지 않았다. 10가지 항목은 갑질 폭로 대상이었던 파출소장이 지난 6월 경찰서에 민원을 제기했다가 박 경위에게 무고 혐의로 고소를 당하자 ‘선처를 바란다’며 다음 달 취하장을 제출했던 내용이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경찰청은 박 경위가 추운 겨울철에 근무복이 아닌 이른바 ‘형사 점퍼’를 입었다는 것부터 ‘비위 사실’로 인정했다. 박 경위가 순찰 업무를 하는 파출소 아동안전지킴이에 무단결근 등을 지적한 것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정됐다. 동료의 코로나19 병가를 대신 내주지 않은 것도 ‘정당한 지시를 불이행’한 징계 사유로 지적됐다.

또한 순찰차를 이용한 날에도 여비를 받아 출장비를 부당수령했고, 근무시간에 공부했다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박 경위는 한겨레에 “대민 부서도 아닌데 겨울철 점퍼 착용 등을 문제 삼았고, 근무시간 공부 등은 사실도 아니다”라며 “옷차림과 출장비 등은 모두 해당 민원을 제기한 파출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인데, 진짜 문제라 비위라고 판단한 거면 이를 관리해야 할 파출소장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박 경위는 파출소장이 근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시시티브이(CCTV)를 돌려본 사실도 확인한 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박 경위의 소명조차 듣지 않았다. 한 차례 소명을 하라는 요청이 왔지만 30장이 넘는 110개 항목을 사흘 만에 모두 소명하기가 어려워 진단서 등을 제출해 기간을 연장했는데, 기한이 마감되기 5일 전 결론부터 낸 것이다.

박 경위는 “출장 장소, 업무, 시간 등을 모두 증빙하라고 하면서 사흘 만에 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파출소장 감찰 건으로 서울경찰청 감찰 담당자를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내부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에게 업무 태만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감찰로 보복을 하는 게 경찰 관행으로 굳어진 것 같다”고 했다.

앞서 광주경찰청에서도 가족 돌봄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단축 근무인 시간선택제로 전환해 일하던 여성 경찰관이 초과근무 수당과 관련해 질의하자, 경찰서에서 감찰도 없이 최근 3년간 복무상황을 모두 입증하라며 직무고발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 경위를 지원 중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의 민관기 회장은 “민원을 제기한 당사자가 취하했는데도, 갑질에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경의 근태를 조사해 끝까지 보복하겠다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서울경찰청 감찰 담당자는 “소명은 경찰서 징계위원회 절차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행정안전부 민원처리 규정을 보면 민원이 취하됐다 하더라도 이미 행정기관에서 인지하게 되면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성동경찰서는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박 경위 징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성동경찰서 금호파출소에서 근무한 박 경위는 파출소장이 지난 4월 지역 유지인 80대 남성 ㄱ씨와의 식사 자리에 자신을 불렀고, ‘회장님’으로 불린 ㄱ씨가 박 경위를 ‘파출소장 비서’라고 부르며 과일을 깎게 시키고 사진을 찍자고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박 경위는 파출소장이 “회장님께서 승진시켜 준대. 빨리 오라”며 다시 부르기도 하고, 근무 시간에 자신에게 단둘이 실내 암벽 등반장에 가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박 경위는 지난 5월 성동경찰서 청문감사실에 진정서를 내 문제제기를 했지만, 당시 서울경찰청은 파출소장에게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지난 7월 박 경위가 사건을 경찰 내부 게시판에 공론화하자, 그제서야 경찰청이 서울경찰청과 성동경찰서에 대한 감찰 조사에 나섰다. 경찰청이 징계위 회부 의견을 통보함에 따라, 서울경찰청은 지난 7일 파출소장에 대한 징계위를 열었고, 아직 징계 발령은 나지 않은 상태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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