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수 전 슈퍼랩스 대표…제조사·통신사·개발사로 영역 넓혀
가상현실(VR)·메타버스·인공지능(AI) 등 신사업 개척
"혁신은 융합에서 나온다…소통·존중이 중요"
24년 만에 쉼표…"커리어는 장거리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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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수 전 슈퍼랩스 대표의 별명은 '극단적 경험주의자'다. 뭐든지 몸으로 부딪쳐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그만큼 전 전 대표의 이력은 스펙트럼이 넓다. 삼성전자, SK텔레콤, 슈퍼랩스 등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제조사, 통신사, 소프트웨어(SW) 개발사를 두루 거쳤다. 그 안에서도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확장가상세계(메타버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신사업을 도맡았다. 남보다 먼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면 기회만큼 리스크가 큰 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신기술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굳이 선발대로 나서 찬바람부터 맞느냐"고 하지만 전 전 대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화살촉처럼 앞에서 뚫고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 삼성전자 입사 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지난 9월 슈퍼랩스 대표직을 내려놨다. 24년 커리어의 첫 휴식기를 가진 전 전 대표를 만났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다"
전 전 대표가 최전방에 서길 주저하지 않는 것은 작은 성공에서 시작됐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SW 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시작부터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첫 플래그십 휴대폰 'SPH-A500'을 개발한 것. 고화질 액정표시장치(LCD)를 넣은 컬러폰에 게임 엔진을 처음으로 탑재했다. 소니, 에릭슨 등 경쟁 제품보다 10~20% 비싼 가격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옆 좌석에 탄 남성이 비행 내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 "이 폰 정말 멋지지 않냐"고 자랑했다. 전 전 대표는 "그걸(SPH-A500) 개발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되받아쳤다. 그는 "수개월 동안 밤낮없이 매달린 일이 성공을 거두니 큰 계단 하나를 올라선 느낌이었다"며 "자신감이 생기면서 전방에서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전 대표는 갤럭시 노트, 갤럭시 탭 시리즈 등 여러 기기를 넘나들며 SW를 개발했다. 중국, 일본, 유럽향 단말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플랫폼사나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와 소통할 기회가 따라왔다. 다양한 기기와 플랫폼, 시장을 두루 경험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입사 12년차가 되자 단말기 제조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는 확신이 섰다. 그는 "경쟁사가 모토로라였을 때 시작해 갤럭시S2로 애플을 제치는 것까지 경험했다"며 "더 성장하려면 필요한 것은 변화"라고 판단했다.
파워K우먼-전진수 전슈퍼랩스 대표 인터뷰.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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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업만 10년…치열함·꾸준함으로 입증
전 전 대표는 2012년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AR, VR, 몰입형 미디어 등을 담당했다. 다가올 5G 시대에 맞는 새 콘텐츠와 서비스를 개발하는 역할이었다. 새로운 시도라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2014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소개한 '라이프 로그' 서비스, 2018년 선보인 '홀로박스'가 그의 작품이다. 라이프 로그 서비스는 스마트폰에 있는 문자, 일정, 앱 정보뿐 아니라 주변 기기 정보로 사용자의 생활을 읽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되고 수면 관리 같은 라이프 로그 서비스가 다양해졌지만 2014년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홀로박스는 눈으로 보는 AI다. 원통형 박스에게 말을 걸면 AI 기반 홀로그램 캐릭터가 나와 대화를 나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인기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웬디'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했다. 전 전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빠른 시도였다"며 "사업성이 떨어져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기술이 이프랜드(메타버스)와 에이닷(AI 개인비서)의 기반이 됐다"고 회상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을 이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회사 경영진뿐 아니라 팀원을 설득해야 했다. 전 전 대표가 해마다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치열하게 자신의 비전을 입증했던 이유다. 꾸준함도 그의 무기였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매달렸다. SK텔레콤이 메타의 V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를 처음 들여올 때 일이다. 한국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기기를 만져보고 애프터서비스(AS)를 보증받아야 통하는 시장이다. 그러나 메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직접 판매만 고집했다. 전 전 대표는 "한국의 유망한 VR 스타트업을 살리려면 오큘러스가 꼭 한국 매장에 들어와야 한다고 3년 가까이 설득했다"며 "2021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유통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워K우먼-전진수 전슈퍼랩스 대표 인터뷰.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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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함과 꾸준함이 쌓여 성과가 됐다.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먼저 반응했다. 2015년과 2017년 구글 최대 개발자 행사인 구글 I/O에 초청받았다. SK텔레콤은 구글과 협력해 AR·VR 플랫폼을 선보였다. 국내 기업이 두 번씩 초청받아 기술을 소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 전 대표는 "AR, VR 분야가 주목받지 못했을 때지만 빅테크와 협업하면서 조직안에서도 힘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SK텔레콤을 이끌던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나 유영상 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안팎의 지원을 토대로 2021년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내놨다. 영어·중국어·일본어 버전을 만들어 49개국에서 동시에 출시했다. 메타버스에서 K팝 공연을 열거나 현지 인플루언서와 인증샷을 찍는 등 글로벌 공략 콘텐츠를 실었다. 내수 기업에 그쳤던 통신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출시 5개월 만에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00만도 돌파했다.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도전 멈추지 말아라"
전 전 대표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간의 기술을 총집결해 메타버스를 출시했지만 새로운 과제가 눈에 들어왔다. 전 전 대표는 "메타버스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땀 한땀 작업해야 하는 등 상당히 노동집약적"이라며 "AI 기술을 접목하면 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화에 빠르게 올라타기 위해 SK텔레콤을 나와 창업을 택했다. 2022년 생성형 AI로 가상인물을 제작하는 슈퍼랩스를 설립했다. 창업과 동시에 네이버의 투자를 받았다. 네이버에서 유망 서비스 투자·발굴을 맡는 스노우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파워K우먼-전진수 전슈퍼랩스 대표 인터뷰.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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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커리어는 변화무쌍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따르는 원칙이 있다. 우선 '어제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자기 자신을 경쟁 구도의 중심에 두고 더 성장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변화를 줬다. 또 다른 원칙은 조직에 대한 기여도다. 자신과 함께 조직에 속한 다른 사람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전 전 대표는 "IT 업계에 20년 이상 있어 보니 혁신은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때 나오더라"며 "그만큼 나만 잘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모르는 분야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슈퍼랩스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런 원칙에 따른 결정이다.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던 탓인지 번아웃이 오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밀렸던 운동이나 독서를 하면서 다른 스타트업 멘토링도 하고 있다. 그는 "70~80대가 되어서도 성장하면서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며 "쉬었다가 돌아오는 것도 이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표는 후배들에게 계속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전 전 대표는 "(출산이나 육아를 고려하면) 여성의 커리어는 장거리 마라톤"이라며 "조급해하지 말고 새로운 기회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전진수 전 대표는
한양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0년부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SW 엔지니어로 일했다. 2012년에는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SK텔레콤에서는 AR, VR, 몰입형 미디어, 5GX 서비스 개발 등을 담당했다. 2020년부터는 메타버스CO장(부사장)을 맡아 메타버스 사업을 주도했다. 2021년 말 SK텔레콤을 퇴사한 후 2022년 슈퍼랩스를 창업했다. 지난 9월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슈퍼랩스를 떠났다. 슈퍼랩스는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에 흡수합병됐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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