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교의 과학시험에 갑론을박
‘촘촘하게 감다’는 오답, ‘많이 감다‘만 정답 처리
전문가 의견은 “오답 처리가 맞는 것”
솔레노이드 실험 장면.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유튜브채널 'The Engineering Minds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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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교생이 학교에서 과학 서술형 시험 문제를 0점 처리 받은 데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1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오답처리에 대해, 지나치게 완고한 학교 측의 갑질이냐, 아니면 정당한 채점이냐는 주장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여러 사이트에 걸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고 관련 분야 전문가와 현직 교사라는 네티즌까지 총출동했다.
이날 국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교 1등 아이가 0점 처리됐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돌았다.
작성자 A씨는 “고1 아이가 지금까지 전교 1등이었는데 20점짜리 서술형 문제에서 0점 처리가 됐다”며 “답은 ‘많이 감는다’고 아이는 ‘촘촘하게 감는다’라고 썼다”고 밝혔다. 솔레노이드란 도선을 나선형으로 감아 만든 기기로, 에너지변환장치나 전자석으로 이용된다.
A씨에 따르면 해당 문제는 “흐르는 전류의 세기를 크게 하는 방법을 한 가지만 서술하시오”이다. 솔레노이드에서 만들어진 자기장의 세기를 높이는 방법을 묻는 것으로 보인다. A씨의 자녀는 이에 대해 “코일을 촘촘하게 감는다”라고 답했다.
A씨가 해당 문제를 설명하며 올린 그림./온라인 커뮤니티 'MLB파크' |
A씨는 “채점한 선생님은 촘촘하게 감아도 부분적으로만 촘촘할 수 있으니 (정답이) 안 된다고 한다”며 “자료를 찾아보니 솔레노이드 자체를 설명할 때 ‘촘촘하게’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른 학교에서도 ‘촘촘히 감는다’가 정답인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학 담당 부장선생님과도 통화했는데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쓴 것만 정답’이라는 말만 반복했다”며 “안 되면 판사에게 호소하는 게 순리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라고 덧붙였다.
해당 글이 확산하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최초로 올라온 글에는 이날 오후 4시 기준 14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분야 전문가와 종사자는 물론, 현직 교사라는 네티즌들도 반응을 남겼다.
일반 네티즌들 반응은 ‘학생의 답을 정답으로 봐야 한다’는 쪽이 많았다.
‘전기차 모터 개발 업무하는 사람’을 자처한 네티즌은 “일반적으로 코일을 감을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제한된 공간 안에 최대한 촘촘하게 감는다. 보통 저희도 공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가정해 촘촘히 감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많이’와 ‘촘촘하게’가 엄밀히 다른 표현이라며 오답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물리학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네티즌은 “촘촘하면서도 적게 감을 수 있다. 촘촘하게 10분의 1 영역만 감고 나머지는 안 감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직 고등학교 물리교사라는 네티즌 또한 “10번을 느슨하게 감든 촘촘히 감든 (자기장과는) 상관없다”며 오답에 무게를 실었다.
이외에 애초 그런 문제에 ‘20점’이라는 큰 배점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란 지적도 많았다. 현직 수학교사라는 네티즌은 “수업 때 알려준 풀이 방식대로 하는지 확인하는 문제를 가끔 낸다. 그런 걸 의도했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해당 분야 전공 교수들의 의견은 어땠을까. ‘오답 처리가 맞는다’는 쪽이었다.
자기장을 강화하려면 전류의 크기 자체가 크거나 코일을 감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이에 따라 대부분 전문가들은 학생의 답이 정확하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전기분야 박사 과정 연구원은 조선닷컴에 “정확하게는 ‘코일을 감는 횟수를 늘린다’라고 표현해야 한다”며 “’감는 횟수를 늘린다’는 것을 교육과정에서 어떻게 명시하고 있는지에 따라 답안을 처리하는 게 맞다”고 했다.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도 “‘많이 감는다’와 ‘촘촘하게 감는다’는 다른 이야기”라고 밝혔다.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몇 번을 감았느냐가 중요하므로 횟수를 늘리는 것이 관건”이라며 “‘촘촘하게’는 밀도를 뜻하는 것이므로 오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량적인 답이 나오는 문제인데 정성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문제로 출제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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