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가자지구 난민촌 대규모 공습…“빵 사려고 줄섰는데 폭격, 거대한 구덩이에 시신 가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스라엘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공습 이후 현장에 남은 거대한 구덩이 여러개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터에 나와 있던 수십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굉음에 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뛰어간 자리에는 방금까지 건물이 있었다고 믿기 힘든, 예닐곱개의 거대한 구덩이만 남았다. 구덩이 안은 사람들의 시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AP통신·CNN에 따르면, 이날 가자지구 북부 자빌리아 난민촌의 주거용 건물 밀집 구역에 수천㎏의 폭발물이 떨어졌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땅굴을 파괴하겠다면서 난민촌에 미사일을 폭격한 것이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전개한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를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대 병원과 하마스 내무부의 집계를 종합하면, 자발리아 난민촌에서만 사상자 400여명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병원의 관계자들은 50명 이상이 죽고 150여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공습 규모가 최근 공격 중 가장 컸고 잔해에 파묻힌 이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구조대원과 주민들은 삽과 손으로 잔해를 뒤지며 생존자를 찾고 있다.

한 주민은 “빵을 사려고 줄을 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전투기에서 7~8발의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7~8개의 거대한 구덩이는 살해된 사람들로 가득 찼고 신체 부위가 곳곳에 있었다.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폭격 후 현장으로 달려간 또 다른 주민 또한 “아이들이 다친 아이들을 나르고 있었다. 사람의 신체가 건물 잔해 위에 널려 있었는데 그중 다수는 알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 등 외신 영상을 보면 망연자실한 사람들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면서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다. 작은 보자기를 들고 나르던 한 주민은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는가. 아이들(의 시신)이다. 아이들을 담은 천이다”라고 외쳤다.

경향신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에 대규모 공습을 가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주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자지라는 이번 공습으로 자사 가자지구 지국 영상기술자 일가족 19명이 사망했다면서 이스라엘군의 “학살”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자발리아 공습으로 인질들도 숨졌다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자발리아 대학살로 외국 여권 소지자 3명을 포함해 7명의 인질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자발리아 난민촌 인근 병원은 밀려오는 부상자와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의료진이 부족해 자원봉사자들이 붕대를 감는 등 처치를 돕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병원의 수아이드 이다이스 의사는 “이스라엘군은 집안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는 사람들, 어린이, 노약자, 여성을 목표물로 삼았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상자가 도처에 널려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알시파 병원의 한 간호사도 “아이들이 깊은 상처와 심한 화상을 입은 채 병원에 도착했다. 이번 무분별한 폭력 사태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자발리아 난민촌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집과 땅을 잃고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가자지구 내 8개 난민촌 중 가장 큰 곳이다. 면적은 1.4㎢에 불과하지만 유엔에 등록된 자발리아 난민은 11만6000여명에 달한다. 2014년 가자침공 당시에도 자발리아 난민촌 내 학교가 폭격을 당해 어린아이들이 다수 희생됐으며, 이번 전쟁에서도 지난 9일 공습을 받아 수십명이 사망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참사가 계속해서 벌어지리라는 점이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 밀집된 주거 지역을 향해 더 깊숙이 진군하면서 양측 사상자 모두 급증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AP통신 분석했다. 가자시티 남쪽 도로에서 도보로 몇분 거리에 사는 한 주민은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다. 이스라엘 탱크는 가까이에 있다. 도로 근처에서 포격 소리가 지속해서 들린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공습이 작전상 필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 고위급과 땅굴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이 일대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공습으로 하마스 대원 50여명과 지난 7일 이스라엘 키부츠 기습공격을 주도한 자발리아 여단 지휘관 이브라힘 비아리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대원 수십명이 땅굴에 있었고 공습으로 땅굴이 무너지면서 부수적 피해가 커졌다”면서 “우리는 땅이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하마스가 그곳에 땅굴을 지었고, 그곳에서 작전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마스는 “우리 지휘관 중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뤄진 시간대에 자발리아에 있었던 이는 없다”며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하마스 사살을 구실로 “난민촌의 민간인과 어린이, 약자에 대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정당화한다고 비난했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권은 이날 공습이 민간인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며 일제히 규탄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벳셀렘도 공습 직후 성명을 내 “민간인을 표적으로 하는 것은 항상 금지되며 이스라엘은 이를 지금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