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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감 수준 ‘제시카법’... 성범죄자, 출소 후 지정 시설서만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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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4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한국형 제시카법) 등 입법 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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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한국형 제시카법’을 26일 입법 예고한다.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해 출소 후 국가 지정 시설에 살도록 법원이 명령하는 내용이다. 어린이나 여성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섹슈얼 프레더터(sexual predator·약탈적 성범죄자)’가 복역을 마친 뒤 일반 주거 지역에 살면서 주민에게 공포와 불안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제시카법은 지난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성범죄자가 학교 등에서 일정 거리 안에 거주할 수 없도록 만든 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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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한국형 제시카법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10년 이상 징역형 및 전자 발찌 착용 명령을 받은 사람과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10년 이상 징역형 및 전자 발찌 착용 결정을 받은 사람이다. 법 시행 이전 전자 발찌 착용 판결을 받은 사람도 소급 적용된다. 성범죄로 복역한 뒤 출소한 조두순, 박병화 등이 해당한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적용되는 성범죄자는 출소 후 거주지가 제한된다. 국가·지자체·공공 기관 운영 시설 가운데 법무장관이 지정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지정된 거주지를 하루 이상 벗어나려면 보호관찰소장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주지를 벗어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성범죄자가 지정된 거주지에 살고 있는지 보호관찰관이 점검한다. 거주지 제한과 함께 야간 또는 아동·청소년 통학 시간대 외출 제한, 어린이 보호 구역 출입 금지 등도 부과될 수 있다. 한 법조인은 “재수감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은 검사의 청구로 법원이 명령하게 된다. 거주지 제한 기간은 전자 발찌 착용 기간 범위 안에서 판사가 결정한다. 강간의 경우 전자 발찌 착용 기간은 3년 이상, 20년 이하로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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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상훈


24일 법무부에 따르면, 성범죄로 복역한 뒤 출소한 전과자 중 거주지 제한이 가능한 인원은 작년 말 기준으로 325명이라고 한다. 거주지 제한 대상 성범죄자는 올해 69명, 내년 59명, 후년 59명 등이 추가 출소할 예정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거주지 제한은 성범죄 판결 내용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지는 나쁜 놈들, 과연 15년간 수감됐다고 달라질까 우려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며 “이런 사람들은 섹슈얼 몬스터(sexual monster·성범죄 괴물)”라고 말했다.

애초 법무부는 고위험 성범죄자가 학교·유치원 등에서 500m 이내에 살 수 없게 하는 거주지 제한을 검토했지만 이번에 포함하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은 국토가 좁고 수도권 인구 밀집도가 높아 (500m 기준 적용 시) 거주 가능 지역이 부족하다”며 “고위험 성범죄자가 노숙자가 돼 재범 위험성이 커지거나 수도권·도시 이외 지역에 들어가 지역 간 치안 불균형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깊은 산골이나 무인도가 아니면 500m 기준을 지킬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또 서울에 사는 성범죄 전과자 426명 중 349명(82%)이 초등학교에서 500m 이내에 사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미국은 거리 기준과 거주지 지정을 모두 적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 형법은 고위험 성범죄자의 출소 후 거주지를 특정 장소로 지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 39주에서는 성범죄자가 학교 등에서 300~600m 이내에 살 수 없게 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국토가 넓지만 이 법을 지키려면 성범죄자들이 외딴곳에 있는 이동식 주택 마을에 살거나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법무부는 또 한국형 제시카법 적용 대상인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약물 치료도 강화하기로 했다. 기소 단계에서 검사가 성 충동 약물 치료를 반드시 법원에 청구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간 약물 치료 청구가 재량 사항이라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2011년 이후 약물 치료를 받은 성범죄자 75명 중 재범은 1명에 불과했지만 약물 치료 청구가 기각된 성범죄자가 2년 안에 재범한 비율은 10%였다”며 “약물 치료가 고위험 성범죄자 성 충동 억제에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1월 한국형 제시카법을 ‘2023년 5대 핵심 추진 과제’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한 뒤 법안을 준비해 왔다. 8세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이 지난 2020년 말 출소하면서 이 법 도입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허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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