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찬반’ 화환 쏟아져
비상계엄 사태가 만든 ‘화환 물결’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화환이 여야 당사, 국회의원 사무실 앞 등에 쏟아지고 있다. 왼쪽은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응원 화환이 늘어서 있는 모습. 오른쪽은 지난 11일 대구 수성구 국민의힘 대구시당 사무실 앞에 놓인 국민의힘 규탄 화환. /조인원 기자·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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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친야·친여 진영의 화환(花環)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비롯,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전국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 등에 대통령 탄핵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화환 배달이 폭주하는 상황이다. 최근 ‘화환 시위’ 정착으로 조금씩 활로를 찾아가던 화훼 농가들은 국가적 위기 국면에 찾아온 뜻밖 호황에 “매출이 는 것은 좋은데 나라가 걱정된다”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찰이 1차 압수 수색을 시도한 지난 11일 이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서문(西門) 앞 거리와 한남동 관저 인근엔 노란 백합, 빨간색·분홍색 거베라 등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화환 수백 개가 길게 늘어서 있다. 화환 리본엔 “계엄령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님 힘내세요” “내란죄는 민주당 패거리들” “윤석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당신 뒤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탄핵 24번이 내란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잃으면 대한민국도 사라진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힘든 여정 국민이 함께한다. 윤석열 대통령님 여사님 건강 지키시고 힘내세요” 등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는 상반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윤퇴청)은 최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국민의힘 장례식’을 열고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의원들을 규탄했다. 이들은 검은 옷을 입고 국민의힘 마크가 중앙에 박힌 영정 사진을 든 채 국화꽃 한 무더기를 당사 앞에 놓았다. 이들은 ‘내란공범 국힘해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탄핵 찬성으로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외쳤다. 이곳에도 이틀 전 ‘내란공범 국민의힘 해체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적힌 근조 화환이 배달되기도 했다.
탄핵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 지역구 사무실도 ‘조화 폭탄’의 공격 대상이다. 서울 용산구 권영세 의원(용산) 지역구 사무실 앞엔 “영세야, 용산에는 조폭이 없대. 니들이 하도 해처먹어서” 등 문구가 쓰인 화환들이 배달됐다. 민주당 지지자 20여 명은 최근 ‘계엄 해제 탄핵 표결 불참한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사퇴하라’ ‘내란 행위 즉각 수사’ 등의 피켓을 들고 “내란죄 윤석열 탄핵” “권영세는 사퇴하라” 등 구호를 외쳐댔다. 서울 송파구 배현진 의원(송파을) 지역구 사무실 앞에도 ‘동료의 배신자, 송파을의 배신자, 국민의 배신자’ ‘죽었을 테니 보냅니다’ 등 문구가 적힌 조화가 배달됐다.
경북 포항 남구에 있는 이상휘 의원(포항 남구·울릉) 사무실에도 ‘엄마 거 봐 내가 찍지 말라고 했잖아. 내란 동조 하지 마십시오. 탄핵 표결 참석!’ ‘국민에게 총 겨눈 자 용서 없다. 탄핵 찬성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화환들이 놓였다. 반면 전날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입장을 밝힌 김상욱 의원(울산 남구갑)의 지역구 사무실엔 ‘용기를 응원한다’ ‘소신 있는 결단에 감사드린다’ 등 응원 화환이 배달되기도 했다.
전국에서 화환 배달이 폭주하자 ‘여기가 결혼식·장례식장이냐’며 항의하는 상인·주민들의 민원도 빗발친다. 일부 용산구 상인은 ‘대통령실 화환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있다’고 경찰에 항의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우리가 처리할 계획은 없다”고, 용산구청은 “사비로 설치한 화환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수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경기 과천에서 화환 공장을 운영하는 강모(62)씨는 “계엄 사태가 터진 후 전국 각지 국민의힘 사무소에 하루에 1~2개꼴로 근조 화환이 나가고 있다”며 “특히 용산 대통령실 인근엔 최근 며칠간 ‘윤 대통령 응원 화환’ 주문이 폭주 중인데, 한 번에 10개 이상 주문할 때도 있다”고 했다.
과천의 또 다른 화원 업주도 “연말 승진 인사 등 주문보다 계엄 사태 관련 화환 주문이 몇 배는 많은 상황”이라며 “매출은 훨씬 늘어서 기분이 좋지만, 국가적 위기에 주문이 폭주한다는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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