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길 바란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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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갈림길에 섰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되살아오면서 정국이 급반전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 과정에서 부각됐던 민주당 내부 갈등 대신 이 대표와 친명계의 일방적인 당 장악 양상이 공고해지면서 내년 총선까지 여야의 극한 대결이 더 첨예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했다. “집권 내내 정적탄압과 야당 파괴에만 골몰해 온 윤석열 정권은 그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민주당은 또 “앞으로도 정권의 폭정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며 “이 대표를 중심으로 당의 역량을 총결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구속 리스크’에서 해방되면서, 민주당 내 친(親)이재명계와 비(非)이재명계의 갈등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체포안 국면을 거치면서 민주당 원내사령탑이 범친명계 홍익표 원내대표로 교체되고, 비명계 송갑석 전 최고위원이 사퇴해 당 지도부의 단일 색채가 강해졌다. 당내 친명계는 “이 대표가 그냥 살아온 게 아니라,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수도권 초선)라거나 “그간 탕평 지도부로 운영해 온 것과 달리, 앞으로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본격 가동될 것”(당 관계자)이라고 평가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및 의원들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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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야 관계에선 당분간 격한 대치 국면이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 6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선 민주당이 '부결'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혀온 이균용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을 두고 여야가 격돌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이 강행 처리 수순을 밟아 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법 개정안) 상정 문제도 정국의 뇌관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선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다시 강공 드라이브를 걸 거란 관측이 나온다.
195일 앞으로 다가온 내년 4·10 국회의원 총선거 역시 ‘이재명의 민주당 체제’로 치를 가능성이 커졌다. 이 경우 지난해 대선에서 0.73% 포인트 차 박빙 대결을 펼친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가 총선에서 재차 맞붙는 구도가 될 수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영장 기각으로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할 공산이 커졌다”며 “극단과 극단이 맞붙는 ‘대선 연장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몇 가지 변수는 남아있다. 우선 ‘구속영장 리스크’는 일단 종식됐으나, 이 대표의 법정 공방은 초입 단계다. 지난 15일 열릴 예정이었다가 이 대표 단식 여파로 연기된 대장동·성남FC 의혹 사건 첫 재판이 다음 달 6일 열린다. 법원에 제출된 기록만 총 20만 쪽으로 일주일에 두 차례씩 재판이 열릴 전망이다.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 공사개발1처장을 모른다고 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도 2주일에 한 번꼴로 열린다. 백현동·쌍방울 의혹까지 재판에 넘겨지면, 자칫 1주일에 2~3일씩 이 대표가 법원을 들락거려야 할 수도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영장 기각으로 흐름은 뒤집혔으나, ‘재판 리스크’는 남아있다”(중진 의원)는 말이 나온 이유다.
친명계와 비명계 간의 내홍 수습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숙제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들이 영장 기각 뒤에도 비명계를 향한 ‘피의 숙청’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 대표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에는 이날도 “약해지지 말고 가결자는 척결하자” 같은 징계 요구가 계속됐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이상민, 김종민, 이원욱, 설훈, 조응천 의원 징계를 청원한다’는 글은 27일 오후 5시 현재 답변 기준(5만명)을 훌쩍 넘은 5만7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국회 앞에서 부결 농성을 벌이던 이 대표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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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지지층을 달래는 건 결국 이재명 대표의 몫이라는 게 당내 공통된 지적이다. 친명계 중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에게 ‘이제는 통합과 민생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며 “고비를 넘었으니 리더십을 잘 확보하고 무엇보다 당이 분열로 가지 않게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포안 부결표를 던진 비명계 재선 의원도 “개딸에 편승해 호가호위하는 이들과 달리, 이 대표는 총선을 이기고 대선에 나가는 게 목적”이라며 “지금은 오히려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통 크게 당을 화합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의 선택은 향후 총선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양극단의 대립 정치가 진영 대결을 강화할수록, 역으로 중도층이 캐스팅보트가 되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재명 체제’가 공고해졌지만, 강성 지지층 목소리를 제어하지 못해 비명계를 내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중도층이 민주당을 찍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중도층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 실장은 “단식 국면을 거치면서 이 대표 지지층이 지나치게 강성 일변도로 흘렀다”며 “이로 인해 이 대표의 확장성이 제한된다면, 이게 거꾸로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성지원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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