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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채병건의 시선] 도전이자 기회, 한·미 조선업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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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채병건 Chief 에디터


미 해군에는 4만t급 강습상륙함인 박서함이 있다. 강습상륙함은 병력을 싣고 작전 지역에 접근해 상륙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 함정은 수리 보수 작업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임무 불능 상태에 있었다. 2020년부터 2년간 2억 달러를 들여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이후에도 하자가 계속 발생했다. 박서함은 올여름에야 활동을 재개해 지난달 포항 앞바다에서 열린 한미 연합훈련 때 모습을 보였다.

박서함이 장기간 군항에 묶여 있는 동안 그 부담을 떠안은 건 또 다른 강습상륙함인 바탄함이다. 바탄함을 박서함이 교대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돼 바탄함이 바다를 떠돌아다녔다.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는 지난 8월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바탄함과 승조원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 승조원 1200여 명이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로 넘어가며 8개월째 바다에서 보냈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 보완할 최적 파트너

트럼프 정부의 부담 전가가 변수

정부, 미 설득할 ‘윈윈’ 전략 내야

압도적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해군 분야에선 중국의 물량전에 밀리며 세계 1위를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앞서 3월 중국은 370척 이상의 전투함정을 보유한 반면 미군은 292척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소가 부족해 신규 함정의 건조도, 보유 함정의 수리도 모두 늦어지고 있어서다. 현재 미 해군이 운영하는 조선소는 4곳에 불과하며, 과거 군함을 건조하던 조선소 7곳은 문을 닫았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 조선업은 당분간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숙련 인력 이탈과 공급망 불안을 그 이유로 꼽았다. 조선업은 건설업에 버금가는 노동집약형 산업인데 미국은 경쟁력 약화로 조선소가 속속 문을 닫으면서 숙련 노동력이 떠나가 재충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또 배는 건조(ship building)라는 표현처럼 아래에서 위로 블록을 쌓아가는데 블록에 들어가는 기자재를 어느 하나라도 적시에 공급받지 못하면 전 일정이 줄줄이 지연된다. “뒤늦게 배 옆구리를 찢어 블록을 밀어 넣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후 장비를 교체해줄 업체가 폐업했을 경우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미국은 이런 서플라이 체인이 한국처럼 살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당장의 해법을 찾기 어렵자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조선소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초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조선소를 둘러봤던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장관은 본국에 돌아간 뒤 “한국에서 디지털화 수준과 실시간 모니터링에 놀랐다. 한국 조선소는 선박 인도 날짜까지 제시할 수 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 쪽에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었다. 이 회사의 최태복 이사는 “국내 조선소는 인도 기일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방위사업청에 수억 원의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기에 날짜 준수가 철저하다”며 “우리는 날짜에 단련돼 있으니 당연히 인도 날짜까지 약속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매뉴얼 대사가 8월 WP 기고에서 “일본과 한국엔 당장 (미군 함정) 수리 보수에 나설 수 있는 최신 조선소가 많다”고 알린 대로 한국 조선업계는 미 해군을 도울 매력적인 파트너다.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한화오션 고문)은 “서태평양에 전진배치된 미군 함정을 본국으로 보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수리보수하는 게 작전 공백을 크게 줄인다”고 설명했다. 최 이사는 “건조 비용으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저렴한 만큼 가성비에 관한 한 한국이 최적의 상대”라고 자신했다.

다만 한미 간 이해가 완전히 일치할지는 미지수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제 첫발을 내디딘 미군 비전투함 수리뿐 아니라 전투함 수리와 건조까지 참여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존스법’으로 해외 조선업체의 미군 함정 건조를 차단하고 있다. 존스법은 미국 항구를 오가는 선박은 미국인에 의해 건조·소유·운항되고 미국에 등록해야 한다는 조선 독점법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국내 일자리 보호’를 내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존스법 장벽을 낮출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또 다른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비용 분담 압박이다. 트럼프 2기 관료들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한국이 포함된 서태평양을 지키는 미군 함정 수리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조선업 협력’을 기대했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는 ‘조선업 지원’이 된다. 어떻게 전개되든 한·미 조선업 협력은 한국에 도전이자 기회다. 어느새 한국 조선업계는 미군이 함정 수리를 맡길 정도로 성장했고, 이젠 정부가 뛰어야할 때다.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 한·미가 윈윈하는 방산동맹으로 도약할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채병건 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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