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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범죄단체죄'는 만능칼?…박사방부터 리딩방까지 죄다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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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에 달하는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 12억원을 가로챈 일당 7명이 지난 7월 6일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 국상우)는 이들에게 사기죄 외에 범죄단체조직(범단)죄(형법 114조)도 적용했다. 일명 ‘리딩방’ 투자 사기 일당을 범단죄로 기소한 첫 사례다.



형법 114조의 재발견…“코인 다단계에도 적용” 목소리



최근 검찰에선 ‘형법 114조’의 재발견이 활발하다. 형법 114조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었지만 1961년 5.16 직후 도입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이 입법 취지를 대신하면서 한동안 사실상 독립적인 활용가치를 잃은 채 방치됐던 조항이다. 폭처법은 주로 떼강도·깡패 등을 소탕할 때 적극적으로 쓰였다. 요즘도 수노아파 같은 전통적 깡패들에게는 같은 법이 활용된다.

형법상 범단죄가 재발견되고 있는 것은 이와는 궤가 다른 범죄 유형에서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2021년 10월 징역 42년이 확정된 조주빈과 박사방 사건 때 이 조항을 활용한 기소는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조주빈 일당은 온라인상에서 벌인 일로 범단죄가 적용돼 유죄가 확정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요즘 형법 114조는 여럿이 협력해 벌인 범죄를 일망타진하는 만능 그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는 리딩방 사기 외에도 보이스피싱과 강남 학원가 마약 유통 사건,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 등 다양한 장르의 범죄에 이 법이 적용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범단죄 기소 건수는 2015년 73건에서 2021년 558건으로 늘었다. 최근 검찰에선 “‘김치코인’ 사기 사건에 범단죄를 적극 적용해야 한다”(기노성 부장 검사)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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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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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폭처법만 적용되던 시기 법원에서 ‘범죄단체’로 인정받으려면 수사기관은 ▶다수의 구성원 ▶일정한 범행 목적 ▶시간적 계속성 ▶지휘∙통솔체계 등 까다로운 구성요건을 입증해야 했다. 폭처법상 범단죄는 ▶폭력행위와 무관한▶온라인 중심으로 활동하는 ▶점조직 형태의 다양한 조직범죄들에 적용하기 어려웠다. 마약 유통, 코인 및 주식 리딩방 사기, 온라인 도박 등이 그런 부류들이다.

새로운 시도는 2013년 형법상 범단죄의 요건에 ‘등’이라는 글자가 추가돼 ‘범죄단체 조직’이라는 문구가 들어서면서 가능해졌다. 2015년 대구지검이 보이스피싱 사건에 형법상 범단죄를 적용해 기소한 게 재발견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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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이같은 변화에 조응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7년 첫 기소 사건에 대해 유죄확정판결을 냈고 2020년 8월 대법원은 중고차 사기 일당에 적용된 범단 혐의를 무죄라고 본 1∙2심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당시 하급심은 친분을 토대로 팀이 결성돼 이들을 범죄 조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은 “대표·팀장·출동조·전화상담원 등 정해진 역할분담에 따라 행동했다는 점에서 사기 범행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체계를 갖춘 결합체, 즉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해당한다”고 봤다. 수직적 지휘체계가 없더라도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다는 판례였다.



“강력한 무기”vs“남용 우려”vs“궁여지책”



검·경이 꼽는 범단죄 활용의 이점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조직 범죄 엄벌과 ▶빠른 피해 회복 등이다.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범단죄까지 함께 적용되면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이 가능해진다. 범죄집단 구성원에게서 발견된 자금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더라도 범죄수익으로 인정돼 곧바로 추징·보전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도 있다. 김호삼 전 보이스피싱범죄합수단장(현 원주지청장)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범죄단체조직죄는 악질적인 조직 범죄에 가담한 이들의 형량을 높이고 범죄수익 환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범단죄 적용의 남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예를 들어 다단계 투자 사기 형태를 띠는 상당수 암호화폐 사기 사건에서 손실을 만회하고자 다른 투자자들을 모집해 범행에 관여하게 된 피의자들을 조폭 처벌하듯 범단죄로 묶어 기소한다면 과도한 형벌에 처하거나 낙인을 찍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범행 의사, 가담 경위, 활동 정도 등을 면밀히 따져 단순 가담자가 아닌 조직 핵심 등에 대해서만 범단죄로 의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 가담자에게 지나친 형법일 내려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직적 범죄에 범단죄를 적용하는 데에 따른 실익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사 편의적으로 범단죄를 일률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국회에서 추진 중인 ‘다중사기범죄피해방지법’과 같이 진화한 범행 양태에 맞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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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건축업자 A씨의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A씨는 인천 일대 빌라·아파트 등 총 533채의 전세 보증금 53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6월 27일 기소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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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에서도 범단죄 적용 범위 확대를 궁여지책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원한 한 차장검사는 “최근 문제가 되는 신종 조직범죄는 평범한 서민을 타깃으로 큰 피해를 양산하는 사회 악”이라며 “범단죄 적용만으로는 범죄를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범단활동의 목적이 되는 사기·마약·도박 등의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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