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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우직하고 바보 같았던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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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심야의 숲’ 대표 서정일을 기리며

한겨레

2015년 성수동에 수제맥줏집 열고

지역이 ‘핫플’로 뜨는데 일조했지만

두배로 뛴 임대료에 결국 문 닫아

“노포 되는 길은 건물주밖에 없나”

물새는 지하창고에 라이브바 개업

강남서 배달전문 업장도 함께 운영

수수료·재료비 인상 “어찌해야 하나”

6년간 하루도 못쉬더니 결국 과로사

서정일.

내 친구. 대한민국의 자영업자. 서울 성수동 라이브 재즈 바 ‘심야의 숲’ 대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외국계 무역상사에서 일했다. 그는 2015년 성수동에 수제맥줏집 ‘탭하우스 숲’을 열었다. 외국 손님에게 추천할 만한 수제맥줏집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떠나 자영업의 정글로 뛰어드는 그를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맥줏집의 위치도 조용한 주택가였다. 장사를 오래 할 수 있을지 그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모였다. 우연은 아니었다. 그가 엄선한 맥주는 맛있었고, 소스까지 직접 만든 안주도 사람들을 끌었다. 골목길도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성수동이 지금의 ‘핫 플레이스’가 되는 데 본인도 일조했다고, 서정일은 어느 날 친구들에게 흐뭇하게 얘기했다.

한겨레

긍정적이며 양심적이고 성실했던 대한민국의 자영업자 서정일. 6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지만 그의 삶은 빠듯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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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올린 지역 시세에 그가 떠밀렸다. 건물주는 2021년 임대료를 두배 올리겠다고 알렸다. 서정일은 21년 5월4일 소셜미디어(SNS)에 “갑자기 머릿속이 하이얀 눈밭을 걷는 듯” 하다고 썼다. 코로나19 바람 속에서도 버티던 맥줏집은 그해 8월 문을 닫았다. 같은 달 그가 올린 글이다. “탭하우스 숲을 정리하면서 노포가 되는 길은 건물주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성동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상권을 조성하겠다고 천명했던 곳은 오래된 상점들이 거의 남지 않은 곳이 돼버렸다.”

서정일은 이참에 오랜 꿈 하나를 실현했다. 라이브 바를 열 작정이었다. 성수동의 드높은 시세는 그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오랜 발품 끝에 성수동 한 모퉁이의 물 새는 지하 창고에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가게 ‘심야의 숲’을 그는 정성스럽게 가꿨다. 최고의 뮤지션을 초대했다. 섭외만 담당하는 직원도 뒀다. 자동차 정비소 건너편 지하 창고에는 밤마다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 사장은 공연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연주자를 소개했다. “공연을 하는 재즈클럽으로 본격 출발한 지 두 달 반이 되었다. 퓨전 재즈부터 아방가르드까지 폭넓게 프로그램을 소화해 보겠다고 작정했는데…, 음악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늘 아쉽다.” 2022년 7월4일 그는 이렇게 썼다.

배달 전문 바비큐 업장도 따로 운영했다. 나쁘지 않았다. 2021년 12월10일 올린 글이다.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강남 지역에서도 바비큐 업장으로 배달 1등이 되었네요. 진심으로. 마케팅 차원에서 다소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더 돌아가게 다소나마 가격을 조정해야 할 텐데 고민이네요.” 이곳의 바비큐 음식을 라이브 바의 안주로 제공했다. 그의 말대로 “일을 하다 보니 당연히 맥주는 맛있고 음식은 최고 수준이면서 엄청난 수준의 연주를 보여줘야 하는 가게를 하게 됐다”.

자영업의 정글 속에서 심야의 숲은 아슬아슬하게 생존했다. 불리한 입지 때문에 매상은 불안정했다.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수수료도 걱정이었다. 2021년 12월30일 서정일은 한 배달 앱의 수수료 11.0~19.8 % 인상 결정 소식을 전했다. “양을 줄이든가, 재료를 싼 걸 쓰든가. 이건 차마 못 하겠습니다. 접고 말지. 이래저래 힘들군요.” 인건비 부담도 컸다. 직원들을 가능한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에너지와 재료 가격도 무서웠다. 2022년 7월15일 그가 썼다. “우리 바비큐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부위가 돼지고기 스페어 립. 최근 두 달 동안 슬금슬금 가격이 오르더니 50% 인상까지 찍었음. 어이쿠, 이걸 뭘 어찌해야 하나?”

한겨레

서울 성수동 한 모퉁이의 물 새는 지하 창고에 문을 연 라이브 바 ‘심야의 숲’에서 발언하고 있는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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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타산은 그의 몸뚱이를 허물며 맞췄다. 그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2015년 가게를 연 이후 6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를 버티게 한 힘은 좋은 음식과 음악을 나눈다는 자부심이었다. 2021년 4월17일 배달 음식을 포장할 때 일일이 넣었던 손글씨다. “매년 오늘은 세월호를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저 정직하게 요리하고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부심도 몸과 함께 가라앉았다. 2021년 7월4일에 그가 쓴 글이다. “그동안 10톤 이상의 고기를 손질하고 구웠다. 아직도 나는 매일 조마조마하고 고기 굽는 동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얼마나 더 지나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불안의 터널은 2년 더 이어졌다. 손글씨로 공연 소식을 알렸던 소셜미디어의 새 글은 2023년 8월6일에 멈췄다. 그의 식은 몸은 8월8일 오후 4시께 매장에서 발견됐다. 과로사였다. 향년 50. 아내와 세 딸이 남았다. 가장 우직하고 바보 같았던 자영업자, 서정일의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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