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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쿠데타와 돈벌이를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강수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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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손에 쥐어진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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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의 ‘하나회’가 주도한 쿠데타 이후 45년 만이다. 없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와는 달리 이는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려는 셀프-쿠데타(친위 쿠데타)였다.



위 계엄 선포 전문엔, 비상계엄의 주요 동기가 나온다. ①민주당 주도의 국회가 탄핵과 특검의 칼을 휘두름, ②정부 예산의 대폭 삭감으로 국정이 마비됨, ③국회의 입법 독재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험함, ④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함, ⑤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함 등이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는 것!



그렇다면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절대왕정, 전제군주정을 타파하고 공화정을 구현하려는 철학으로 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권보장, 자유계약, 시장경쟁, 선거제도 등 공적 장치들이 근간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오히려 자신과 주변이 자유롭게 군림하며 기득권을 챙기는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 본다. 멀리는 일제 치하의 총독부부터 가까이는 박정희식 통치 체제를 동경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란 자본주의 돈벌이 시스템의 자유주의적 형태에 불과하다.



즉, 자본주의 돈벌이 시스템은 사회적 세력관계에 따라 다양한 얼굴로 변모한다. 그 주·객관적 조건에 따라 권위주의, 자유주의, 복지주의, 환경주의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권위주의적 얼굴은 군부나 검찰이 사회를 폭압적으로 장악하려 할 때, 자유주의, 복지주의, 환경주의적 형태는 그 뒤 민주화 공간의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얼굴들이다. 물론,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인민민주주의)와도 구별된다. 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모순을 동시에 넘는 대안을 생태민주주의라 본다.



이 맥락에서 윤석열의 ‘12·3 쿠데타’를 규정하면, 그것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로 되돌리려는 퇴행이다. 원래 심리학적 ‘퇴행’이란 마치 어린아이가 새 동생의 등장에 (엄마의 사랑을 뺏길까) 두려움을 느껴 여태 잘 가리던 배변을 실수하는 현상이다. 검찰공화국 대통령의 관점에서, 또 정치경제적 카르텔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가 매우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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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민주당 중심의 국회는 사사건건 ‘방해물’이고, 차기 대선에선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판이며, 노동자, 농민, 시민의 저항은 드세고, 갈수록 복지주의나 환경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도 높으니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항 세력들을 “종북 반국가세력”, 즉 “괴물”로 규정하고 “척결”(뼈와 살을 분리함)하겠다고 나선 것! 그것이 곧 비상계엄이다.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발 빠른 국회의원들과 슬기로운 시민들의 생동하는 연대로 조기 종료된 지금, 이제는 ‘사회 대개혁’을 위한 목소리가 드높아진다. 물론, 윤석열과 그 주변 세력들, 특히 아직도 ‘부정 선거’ 망상에 빠진 극우 유튜브식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계엄의 정당성과 국회 해체를 요구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이 역사적 퇴행들에 효과적으로 맞서면서 다른 편으론 ‘사회 대개혁’의 내용을 채우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사회 대개혁을 위해선 과거 개혁 정책들이 왜 실패했는지 성찰하면서도 그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내 생각엔 과거의 개혁들이 실패한 까닭은 한편으로는 추진 세력(시민사회 포함)의 조직적 역량 부족 탓도 있지만, 다른 편으로 개혁의 내용들이 기껏해야 자유민주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 사이를 왕래하는 정도, 결국 자본의 돈벌이 시스템에 갇혔던 탓이 크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유주의 경제를 활성화, 개인과 국가를 부유하게 할 것이라 했다. 그런 논리는 봉건주의 체제를 타파하고 자본주의를 여는 데는 기여했으나 결국은 독과점과 공황, 그리고 식민지와 전쟁을 부르고 말았다. 그 뒤 등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공황을 타파하려면 유효수요(구매력)를 증강해야 한다 했다. 1929년 세계대공황 국면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케인스주의식 ‘뉴딜’을 통해 공공 고용창출, 노동권 강화, 임금 인상, 사회복지 구축 등으로 공황을 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은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이 공황을 종식시켰고, 전후 부흥의 바탕이 됐다. 그 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산다. 이는 국가와 공공부문 축소, 자본의 자유 증대, 노동권 규제와 노동 유연화, 민영화·사유화 증대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 결과, 갈수록 사회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이 증가하고 기후위기 등 인류 생존도 벼랑에 내몰린다.



요컨대, 쿠데타를 넘어 우리는 전진 또 전진해야 한다. 경쟁적 대학입시와 노동시장에서 오는 불안과 불평등을 근본 해소하고, 대의 민주제가 낳은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감을 넘어서며, 수도권 과밀화와 농어촌 공동화의 모순도 극복해야 한다. 또 대량실업과 과로사가 공존하는 노동 현실도 바꿔내고, 아이 낳고 기르기, 여유로운 노후가 행복의 원천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언론과 검찰 개혁은 필수다. 즉, 돈벌이가 아닌 ‘살림살이’를 중심에 두는 사회 대개혁이 모두의 과제다.



진정한 사회 대개혁은 비록 그것이 힘들지라도 이런 큰 그림 아래 보다 차분하게, 보다 체계적으로, 보다 평화롭게, 그리고 보다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대개혁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열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쿠데타와 같은 퇴행적 전철을 밟게 된다. ‘사활을 거는 심정으로’ 외치건대, 돈벌이를 위한 권력 장악이 아닌, 참된 사회 대개혁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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