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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시위와 파업

또 노조파업 손들어준 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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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노조 파업에 대한 회사 측 손해배상 청구를 보다 엄격히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또다시 냈다.

지난 15일 현대차가 사내 하도급 노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파기 환송한 이후 2주 만이다. 30일 국회 본회의 부의 요구안 표결을 앞두고 있는 '노란봉투법' 통과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9일 현대차가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3건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소송은 현대차가 2012년 8월과 11월, 12월에 벌어진 각 공장 점거와 관련해 노조를 상대로 모두 5억4000만원을 청구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예약 방식으로 판매되는 상품이거나 제조업체가 시장 지배적 지위에 있다면, 생산이 다소 지연돼도 매출 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며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는지를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불법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돼 생산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매출 감소에 이르지 않았다면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조합원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노동계 이번 판결 또 학습 불법쟁의행위 더 늘어날것"

대법원은 이날 파기환송한 세 사건을 모두 파업으로 인한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인정했던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있다고 봤다. 위법한 쟁의행위로 인해 조업이 중단돼 생산이 감소됐어도 이후 연장근로 또는 휴일근로 등을 통해 부족한 생산량이 회복하는 등 매출 감소에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무조건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봤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2주 전인 지난 15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가 현대자동차가 파업한 노동자를 상대로 낸 다른 손해배상 사건에서 손해액 산정 방식에 대해 내놓은 새로운 판례를 적용한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15일 현대차 관련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손해액 산정과 관련한 원심을 파기하고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현대차는 2013년 7월 비정규직 지회의 울산3공장 점거로 조업이 63분간 중단돼 손해를 입었다며 파업 참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2심은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해 약 2300만원을 배상하라며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상고심은 "쟁의행위가 끝난 뒤 추가 생산으로 부족한 생산량이 만회됐다면, 조업 중단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묻기 어렵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법원은 '파업에 따른 생산 감소는 곧 매출 감소로 이어졌을 것'이란 추정을 전제로 고정비 등을 손해로 포함해야 한다는 기업 측 주장을 받아들여왔는데, 이를 깨고 새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당시 판결은 야당이 추진 중이고 국회에서 계류 중인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의 유사성 때문에 논란이 됐다. 비슷한 취지의 법 개정을 두고 입법부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습법적 성향을 띠는 대법원 판례가 먼저 수립되면서 입법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상 입법과 비슷한 효력을 지니게 됐다는 비판이다. 노란봉투법은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의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의 새로운 판례에 따라 그동안 1·2심에서 인정된 불법파업에 따른 기업의 손해액 판단이 줄줄이 뒤집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불법파업이 인정돼도 파업 종료 후 연장 및 휴일근로로 생산량을 만회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별도 손해액 입증도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편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야당에 노란봉투법 입법을 재고해달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용자 범위의 모호성으로 노동현장에 분쟁이 폭증하고, 쟁의행위 범위가 확대될 경우 파업만능주의가 고착화돼 노사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형민 기자 / 문광민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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