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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엇 그러니까 이자가…나 ‘금융문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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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2400명 대상 조사서 평균 66.5점

디지털 금융이해력은 42.9점 ‘큰 격차’

입시 별개로 학교 금융교육 의무화해야

[주간경향]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금융문맹을 정의할 때 흔히 거론되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1987~2006년)의 말이다. 금융교육의 중요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부각됐다.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금융이해력 수준은 개선되고 있지만, 계층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과 과목에서 금융(또는 경제)은 여전히 찬밥신세이고, 일선 현장에서 금융을 가르칠 전문가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의 금융교육 의무화, 입시 위주의 교육구조 탈피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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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서울시내 한 은행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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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해력, 우리 수준은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2년마다 ‘금융이해력’을 조사한다. 국제적으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조사가 있다. 조사 문항들을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번. 어느 날 저녁 친구에게 10만원을 빌려줬는데 친구가 다음날 10만원을 되돌려줬습니다. 이 경우 친구가 귀하에게 지불한 이자는 얼마입니까.

2번.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은 생활비가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생각하는지, 거짓으로 생각하는지 선택하세요.

3번. 수수료와 세금이 없고 연 2%의 이자를 보장하는 1년 만기 정기예금(100만원)을 찾지 않고 5년 동안 입금해둔다면(이자는 매년 지급) 5년 후에 해당 계좌에는 얼마의 돈이 있겠습니까. ①110만원 초과 ②110만원 ③110만원 미만 ④주어진 정보로는 말할 수 없음 ⑤모름 ⑥응답 거부.

답은 1번은 ‘없다 또는 0%’, 2번은 ‘참’, 3번은 ‘①번’이다. 금융문맹을 가르는 기준 점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기관은 이런 유형의 문제를 제시한 후 정답 결과를 총점수로 환산해 국가나 개인의 금융이해력 수준을 판단한다.

한은과 금감원이 지난 3월 29일 발표한 ‘2022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만 18~79세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66.5점이다. 2년 전 65.1점 대비 소폭 상승했다. 금융이해력은 금융지식(합리적 금융생활을 위해 갖춰야 할 지식), 금융행위(건전한 금융·경제생활을 위한 행동양식), 금융태도(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의식) 등 3개 분야에 걸쳐 측정된다.

조사결과에서 금융이해력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학력이 높고 소득이 높을수록 금융이해력 점수가 높다. 학력별로는 대졸 이상 68.7점, 고졸 65.4점, 고졸 미만 59.3점이다. 소득별로는 연소득 7000만원 이상 68.7점, 3000만~7000만원 68.0점, 3000만원 미만 63.2점이다. 연령대별로는 30대(69.0점)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20대(48.9점)와 70대(61.1점)는 낮았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번에 처음 실시한 디지털 금융이해력 조사결과다. 디지털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이지만 실제 점수는 평균(66.5점)을 한참 밑도는 42.9점에 그쳤다. 30대(45.0점) 등 젊은층은 비교적 높게 나왔으나 70대(36.0점), 저소득층(39.4점), 고졸 미만(35.9점) 등은 낮았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요즘 금융거래는 스마트폰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기술과 편의성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덧칠’이 된다는 점이다. 보안이나 편의성 강화를 이유로 새로운 규제장치들이 도입되는 셈인데, 모바일 금융거래에 능통한 사람이라면 쉽게 적응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디지털금융 기술이 갈수록 버거워지고 복잡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별 비교 수준은 어떨까. 2020년 OECD 10개국 평균(2019년 조사)은 62점이다. 비교 대상국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콜롬비아다. 2020년 한은과 금감원의 조사결과 점수(65.1점)보다 낮다.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해서 우리의 금융이해력 수준이 OECD 10개국 평균보다 높다고 할 수 있을까. 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018년 발표한 ‘세계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33점으로 아프리카 가봉(35점), 우간다(34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다만 S&P 조사는 2015년에 조사한 결과를 2018년에 발표한 것이어서 OECD 조사결과처럼 우리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과거와 비교해 월등히 향상됐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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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B하나은행이 어린이들에게 바람직한 소비생활과 저축의 필요성 등 경제관념을 심어주기 위해 지난 2018년 5월 3일 부산 남구 오륙도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어린이 뮤지컬 공연 ‘재크의 요술지갑’.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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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외면받는 금융교육


금융이해 격차를 줄이려면 학교 교육 구조부터 손질해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과 과목 편성으로 경제 과목이 홀대받으면서 학생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학교 현장에서 경제나 금융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교사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초·중·고 정규 교과과정에서 경제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사회·문화와 함께 일반사회 영역에 포함돼 있다. 선택 과목이다 보니 관심 있는 일부 학생만 듣는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만족도도 그리 높지 않다. 예컨대 교과 내용이 너무 이론 중심이거나 범위가 방대하다. 맞춤형 수업자료가 부족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시 과목 선택에서도 외면받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021년 9월 내놓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내용 및 집필 기준 평가’ 보고서를 보면 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경제를 선택한 응시자는 5076명에 그쳤다. 이는 사회탐구 영역 응시자(21만8154명)의 2.3%, 전체 수능 응시자(42만1034명)의 1.2%에 불과하다. 수능에서 경제 과목 선택 비율은 과거 2007년 27.8%, 2012년 11.3%, 2017년 2.3% 등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비중이 쪼그라들고 있다. 전경련 보고서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서 경제를 공부한 사람은 매우 소수이고, 대학에서 경제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국민 대부분이 체계적인 경제 공부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경제 교과서에 실린 금융 관련 설명도 추상적이다. 예컨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부동산 담보 대출 관련 내용이 빠져 있거나 사회보험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모두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지식이지만,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을 포함한 경제교육이 (초중고에서) 의무교육이 아니고 수능과도 직접적 연관이 없다 보니 관심이 덜한 게 사실이다. 대부분 학교 졸업 이후 사회에 진입하면서 점차 관심을 갖게 된다. 금융위, 금감원, 교육부 등 관계부처들이 협의해 금융(경제) 교육의 정규 교과과정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교사들의 전문성 부족도 지적된다. 지난해 12월 2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열린 제12차 경제교육관리위원회에서 보고된 ‘학교 경제교육 내실화 방안’을 보면 경제교육 담당 사회 교사들이 경제 관련 전문성이 부족해 경제수업 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학교 경제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됐다. 당국은 내실화 방안으로 실생활 중심의 교과서와 디지털 형태의 교과서 개발, 경제 관련 저명인사의 재능 기부, 경제교육 교사 국내외 연수 등의 인센티브 부여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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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우리·하나은행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판매 관련 철저한 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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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교육은 선택 아닌 의무”


금융교육 활성화는 금융사고 예방과도 직결된다. 예컨대 학교나 직장에서 금융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등 각종 금융사고로 인한 손실이나 피해가 줄었으리라는 의미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금융위기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맞춤형 금융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교육 사례는 참조할 만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10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내·외 학교 금융교육 실시 사례 및 관련 입법례’를 보면, 미국은 2018년 기준으로 22개 주에서 고등학생에게 졸업 필수과목으로 경제수업을 이수하도록 했고, 17개 주에서 졸업 필수과목으로 개인금융 과목(또는 경제 과목 등에 포함된 개인금융 수업)을 이수하도록 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앞서 2003년 금융교육진흥법 제정 이후 국민의 금융에 대한 이해력 향상을 위해 금융교육위원회를 설립했다. 2019년 발의된 청소년 금융교육 법안은 공립 중등학교에서 금융교육을 하게끔 하는 주 또는 지자체에 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영국에서는 2014년 이후 중등교육기관의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켰다.

국내에서도 금융교육 확대를 위한 법 제정이 추진 중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를 금융교육 컨트롤타워로 하고 국가·지자체가 금융교육 지원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교육진흥법안’을 지난 3월 대표발의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이해력을 높이는 효율적인 방법은 자율적인 선택이 아닌 의무화”라고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복리, 위험 분산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게 돼 있다. 사고가 터지면 그대로 휩쓸려 가는 식이다. 금융교육의 근본 취지는 모든 사람이 독립된 주체로서 금융수단을 선택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나아가 직장에서의 금융교육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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