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짜리 바나나’ 먹은 서울대생...작가는 괜찮다는데 네티즌 싸늘, 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을 먹어치운 서울대생 A씨(왼쪽), 데이비드 다투나./ KBS, 유튜브

한 서울대생이 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을 먹은 사건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퍼포먼스 차원으로 벽에 붙여둔 바나나를 떼 먹은 것인데, 작가와 미술관 측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대중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화제가 된 작품은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Comedian)’이다. 하얀 벽면에 은색 덕트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여 놓은 작품으로, 미술 시장 현실을 조롱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작품 가격은 12만 달러(약 1억5000만원)에 달한다.

서울대에서 미학을 복수전공하는 A씨는 지난달 27일 낮 전시돼 있는 바나나를 떼먹은 뒤 그 자리에 바나나 껍질을 붙여놨다. 그는 왜 바나나를 먹었냐는 미술관 측의 물음에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가 고팠다”고 답했다. 이후 벽에는 새로운 바나나가 다시 붙었다. 미술관은 2~3일에 한 번씩 신선한 바나나로 교체해 전시를 유지하고 있다.

미술관은 작품을 훼손한 관객에 대해 별다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소식을 접한 카텔란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바나나라는 사물이 아니라 ‘바나나를 벽에 붙였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개념미술이기 때문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 '위'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뉴스1

비슷한 소동은 4년 전에도 있었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첫 전시 당시 미국의 아티스트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를 떼어내 먹은 것이다. 다투나는 “배가고파서 먹었다. 바나나를 먹은 이 행위를 ‘배고픈 아티스트’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그때도 아트바젤과 카텔란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투나의 퍼포먼스로 작품은 더 유명해졌다. 소셜미디어에는 ‘코미디언’을 희화화하는 인터넷 밈이 쏟아졌다. 싱가포르 디저트판매 업체는 두리안을, 파파이스는 치킨을 벽에 붙이는 등 각종 패러디 광고도 나왔다.

그러나 A씨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달랐다. 온라인상에서는 A씨 행동이 단순히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A씨 지인이 A씨 행동을 직접 영상으로 찍어 언론사에 제보한 게 화제 몰이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A씨는 얼굴과 신상도 밝혔다. 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카텔란의 작품은 권위에 대한 반항이다. 반항에 대한 또 다른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 있다”며 “제가 껍질을 붙이고 나왔는데 작품을 훼손한 것도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99 Old Trees가 1억짜리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을 패러디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조선DB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서울대 자유게시판에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재학생은 “먹으라고 갖다 둔 것이 작품의 의도도 아니고, 이미 2019년에 다른 나라에서 바나나를 먹어 이슈화가 된 적이 있다”며 “톰브라운 넥타이 매고 먹은 뒤 손수 영상 찍어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까지 한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이외에 “포트폴리오를 채우려는 연출로 밖에 안 보인다” “서울대 미학과라고 밝힌 것도 속 보인다” “자아가 비대한 서울대 학부생을 행위예술로 표현한 것” 등의 반응도 올라왔다.

같은 행위를 놓고 다른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안진국 미술평론가는 조선닷컴에 “아트바젤 땐 카텔란의 작품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작품을 훼손한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지도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바라봤다”며 “A씨의 경우 퍼포먼스를 답습한 것일뿐이다. 그 행위에 대해 미술관이 별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점이 어느 정도 예측되는 상황이어서 사람들이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씨의 행동이 ‘카텔란 개인전’이라는 전시회의 목적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4년 전에는 카텔란의 ‘코미디언’이라는 황당한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리면서, 해당 작품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 다투나의 바나나를 먹는 퍼포먼스도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당시 영상을 보면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을 때 웃고 있는 관람객들도 보인다. 안 평론가는 “리움미술관이 카텔란의 작품들을 가져와서 이를 조용히 관람하는 목적의 분위기인데, A씨는 그런 흐름을 깨고 해프닝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라 반감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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