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연
칸 남우주연상 야쿠쇼 코지
화장실 청소부 소박한 삶에
칸 관객 눈물 "영화의 깊이 경험"
배우 야쿠쇼 코지가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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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번화가의 공중 화장실을 정성껏 쓸고 닦는 청소부 일상사가 칸 국제영화제를 사로잡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3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파리, 텍사스’(1984) 등의 독일 거장 빔 벤더스(78) 감독이 일본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측으로부터 제안 받아, 세계적 건축가들이 개축한 도쿄 시부야 지역 공중화장실 17곳에서 단 17일 간 촬영해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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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서 눈물 터졌다, 화장실 청소부의 충만한 삶
주인공은 베테랑 배우 야쿠쇼 코지(68)가 연기한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 그는 매일 공중 화장실에 출근해 맨손으로 담배꽁초를 줍고, 변기 옆에 무릎을 꿇고 보이지 않는 데까지 닦아낸다. 그러다 문득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올려다보는 히라야마의 눈은 맑고 고요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말 ‘코모레비(木漏れ日)’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한때 시궁창 같던 히라야마의 삶에 기적처럼 비쳐든 ‘코모레비’의 형상이 그를 구한다. 히라야마는 단순하고 소박한 인생을,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청소부가 된다.
영화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올려다보는 순간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삶을 밝혀주는 작은 의식처럼 그려진다. 작은 나무 분재 여러 개를 키우는 그는 책도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코다 아야의 『나무』같은 제목의 책만 읽는다. 사진 티캐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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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칸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울면서 극장을 나섰다”면서 “관객은 히라야마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가 선택한 존재 방식이 주는 치유력을 느낀다.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쉘 위 댄스’ ‘실낙원’의 그…일본 안성기
야쿠쇼 코지는 기타노 다케시와 함께 일본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 스타다. 1978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46년간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춤으로 제2의 인생을 여는 회사원을 그려 세계적으로 흥행한 ‘쉘 위 댄스’(1996) 때는 ‘일본의 안성기’로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한 공중 화장실에서 익명의 상대와 낙서 쪽지를 주고받는 장면도 나온다. 야쿠쇼 코지는 “히라야마가 유별난 수도승 같은 남자가 아니라 유머러스함과 다정함을 두로 갖춘 인물임을 보여주는 도구”라 설명했다. 사진 티캐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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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 받았지만, 파격도 마다치 않았다. 외도한 아내를 살해한 후 뱀장어와만 대화하는 이발사를 연기한 ‘우나기’(1997,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할리우드 대작 ‘바벨’(2006), 파격 성 묘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실낙원’(1997),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엽기 범죄 스릴러 ‘큐어’(1997) 등 그의 출연작을 돌아보면, ‘퍼펙트 데이즈’의 담백한 모습이 외려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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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가 경험해”
히라야마는 과묵하고 규칙적인 남자다. 매일 출근하며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듣고, 점심시간엔 흑백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진을 찍는다. 퇴근 후 대중목욕탕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그는 단골 가게에서 술 한 잔 한 뒤, 헌책방에서 산 소설책을 읽다 잠드는 게 낙이다. 연락이 끊겼던 조카딸이 갑자기 찾아오면서, 그의 일상은 뜻밖의 변화를 겪는다.
히라야마의 군더더기 없는 몸짓에 대해선 “조카딸이 등장하기 전, 히라야마의 청소일과 생활에는 물 흐르는 듯한 리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코모레비’를 바라보는 모습을 포함해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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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에게 청소일 배워..."공중화장실 청소는 아름다운 일"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야쿠쇼 코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대사다. 사진 티캐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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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위해 청소부에게 청소일을 배웠다는 그는 "화장실 이용객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하는지 등 대처 방법도 배웠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더러워진 부분을 깨끗하게 하는 마음이 아름답다고 새삼 느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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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 공무원 생활, 예명 뜻도 ‘구청’
이런 공무직 생활을 야쿠쇼 코지도 실제 해본 적이 있다. 가난한 집안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 치요다 구청 토목과에서 4년 동안 근무했다.
스무 살에 명배우 나카다이 다츠야가 주연한 연극 ‘밑바닥에서’를 보고 감명 받아, 배우의 길에 뛰어들었다. ‘야쿠쇼’란 예명도 구청(役所‧야쿠쇼) 직원에서 배역(役‧야쿠)이 넓어진다는 의미로 나카다이가 지어준 것이다.
지난해 10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6회 도쿄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빔 벤더스 감독(가운데)이 '퍼펙트 데이즈' 배우 및 제작진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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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 오마주를 바친 작품이다. 히라야마란 이름도 오즈의 유작 ‘꽁치의 맛’(1962) 주인공에게서 따왔다. 야쿠쇼 코지는 "'퍼펙트 데이즈'와 오즈 영화의 공통점은 스토리의 기복, 그리고 인간을 깊이 있게 그려내 사회상과 테마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스타일"이라며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 스타일 때문에 오즈 영화는 나이 들어 다시 봐도 새로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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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엔딩은 강렬하다. 출근길 운전대를 잡은 히라야마가 충혈된 눈으로 울지만 웃는 얼굴이기도 하다. 그가 외면해온 과거와, 현재의 삶을 함축한 듯한 표정이다. 이에 대해 야쿠쇼 코지는 “17일간 촬영의 마지막 컷이 그 엔딩신이었다. 따로 연기 지시는 없었다”며 “그때까지 쌓아온 시간이 있고, 니나 시몬의 혼이 담긴 노래(‘Feeling Good’)를 실제로 틀어놓고 촬영해서 감독의 연출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히라야마는 매일이 ‘퍼펙트 데이(Perfect Day)’, 완벽한 하루라 여기며 살아간다. 이런 연기를 한 날은 배우에게도 완벽한 하루가 아니었을까. 그는 “배우로 살아가는 한 완벽한 하루란 것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요. 배우 은퇴를 할 때까지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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