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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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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비하인드] 베토벤 합창은 종교곡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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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에 천사 나오는 ‘환희의 송가’

대구 공연에 앞서 “종교적”이라며

자문委서 시립예술단 출연 불허

“종교보다 보편적 인류애 담은 곡”

조선일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공연한 ‘합창’ 음반.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환희의 송가’로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은 과연 종교곡일까. 음악계에 때아닌 ‘합창 논란’이 불거졌다. 다음 달 1일 대구 공연장인 수성아트피아는 재개관을 기념해서 베토벤의 ‘합창’을 공연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이 곡의 종교적 성격을 이유로 시립 예술단체들의 출연을 불허하면서 부랴부랴 출연진이 바뀌는 진통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대구광역시의 시립예술단 설치 조례다. 시 예산을 지원받는 대구시향·시립합창단 등의 공연은 ‘종교 화합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사안일 경우에는 출석한 종교계 자문위원의 전원(全員)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엄격하게 규정했다. 지난달 이 위원회에서 베토벤 ‘합창’의 종교적 성격을 문제삼았다.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노랫말로 사용한 ‘합창’ 4악장에는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선다’는 종교적 구절이 일부 들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긴급 섭외해서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씁쓸한 뒷맛은 남는다.

본래 교향곡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는 기악곡이다. 하지만 베토벤은 ‘합창’ 마지막 4악장에 오케스트라 연주뿐 아니라 독창과 합창을 과감하게 도입했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적 혁신 가운데 하나다. 전문가들은 이 교향곡에서 강조하는 것은 특정한 종교적 의미보다는 보편적 인류애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미 프린스턴대·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음악학자 루이스 록우드는 “베토벤이 만든 선율이 보다 넓은 맥락으로 확산되어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지고 불리게 된 것은, 보다 넓은 세상을 껴안고 수백만의 의식으로 들어가는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드문 예”라고 말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나성인씨도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에서 “베토벤이 청력 상실 같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자 이 음악은 더 이상 베토벤의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환희가 되었다”고 했다.

이런 매력 덕분에 ‘합창’은 20세기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는 곡이 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에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미국·소련·영국·프랑스·독일의 명문 악단들로 구성된 연합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을 연주했다. 당시 공연에는 ‘환희의 송가’ 대신에 ‘자유의 송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같은 해 체코에서 비폭력 평화 시위로 공산 독재를 무너뜨렸던 ‘벨벳 혁명’ 직후에도 체코 필하모닉이 ‘합창’을 연주했다. 당시 연주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온 사람은 훗날 대통령이 된 극작가이자 민주화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이었다. 자칫 종교적 중립성이라는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다가 인류애라는 취지를 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음악계의 우려다.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근원적인 힘이 아닐까.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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