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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범죄에 몸도 마음도 다치고 생계도 붕괴…“피해자 경제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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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헌법 30조, 홀로 남은 범죄 피해자]

①벌이부터 붕괴된 삶

피해자 43% “경제적 지원 절실” 경제활동도 붕괴

“범죄 피해, 누구나 당할 수 있어…‘사회적 보험’ 필요”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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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33)씨는 지난해 5월 이혼한 전남편에게 흉기로 찔려 중상을 입었다. 재결합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쪽 신장이 절반 손상됐고, 온몸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남았다. 치료에만 1천만원이 들었지만, 사건 이후 직장을 쉬게 되면서 경제적 곤란을 겪었다. 나중에 알게 된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일부 치료비를 지원받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재판 절차에 드는 비용은 지원이 없었다. 처음엔 국선 변호사를 몰라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기본 수임료가 1천만원이었고, 재판 때까지 드는 비용은 2천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간신히 센터를 통해 국선 변호사를 소개받았지만, 그나마도 민사 소송은 따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도 힘든 상태에서,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벼랑 끝까지 몰리는 기분이었어요.”

<한겨레>가 심층 인터뷰한 10명의 강력범죄 피해자들은 이씨처럼 한목소리로 경제적 어려움부터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발생한 부상과 정신적 충격으로 일터에 나갈 수 없게 되면서 당장의 치료비나 생활비부터 감당이 어렵게 됐다고 했다. 트라우마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발목을 잡으면서 가정 경제가 무너져 내린 경험을 말하는 이도 여럿 있었다.

피해자 43.5% “경제적 지원 필요”


26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범죄 피해자 지원 서비스 만족도 조사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범죄 피해자 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조사 대상자 853명 가운데 가장 필요한 지원 서비스로 ‘경제적 지원’을 꼽은 이가 43.5%나 됐다. 다음으로는 ‘신변 보호’(13.0%), ‘법률 지원’(11.6%) 등이 꼽혔다. 범죄 피해자들은 최장 3개월 동안 월 최대 50만원을 지원하는 생계 지원금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고, “큰 사고를 겪어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라 생계비가 부족”하다거나 “약값이 생계비 이상으로 들어 생계유지가 어렵다”, “피해 사건 이후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심각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어 생계비가 더 지원됐으면 한다”, “지원 절차가 까다롭다”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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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0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범죄 피해자와 가족의 생계 곤란은 대부분 트라우마로 인한 외부 세계와의 단절에서 기인한다. 40대 여성 이명선(가명)씨는 2021년 7월 중학생 딸이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 더는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됐다. 딸과 함께 극심한 불안증이 오면서 해바라기센터 상담을 받았는데, 그래도 증세가 가시지 않아 지금까지 약물치료를 받는다. ‘내가 왜 딸을 보호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며 받은 스트레스로 장염도 생겼다. 남편 역시 비슷한 증세로 장기간 무급 휴가를 쓰면서 생계 곤란이 왔다. “대출받기도 하고, 보험과 적금도 여러개 해약해서 생활비로 썼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어느 부모든 편안하게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요?”

50대 중반 남성 김정국(가명)씨는 형의 범죄 피해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91살 아버지 돌봄을 하면서 생계가 곤란해진 경우다. 지난해 4월 형이 직장 동료에게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김씨에게 평생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형의 주검을 보고 처음 오열했다. 얼마 전에는 새벽 시간 화장실에 가려다가 안방 문틈 사이로 형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모습도 봤다. 평소 배달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모시던 김씨는 사건 이후 오랜 시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벌이가 확 줄었다.

복잡한 절차에 발목 잡히기도


법적 절차가 더뎌지면서 경제적 곤란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전아무개(33)씨는 2017년 10월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일가족을 잃었다.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가족으로 결합한 새어머니의 아들이 범행을 저질렀고, 아버지와 새어머니, 당시 14살이던 동생이 모두 숨졌다. 이후 전씨를 괴롭힌 건 트라우마만이 아니었다. 숨진 아버지가 보유하고 있던 재산의 대출 이자만 매달 200만원씩 내야 했다. 재산을 팔려고 해도, 법적으로 상속권이 가해자의 딸과 전씨에게 함께 부여된 상황에서 가해자 쪽이 상속권을 포기하지 않아 매매가 난망한 상황이 됐다. 사망보험금 역시 같은 이유로 전씨가 홀로 받아 쓸 수 없었다. 전씨는 결국 민사소송까지 제기했고, 가해자 쪽이 뒤늦게 상속을 포기하면서 사건 발생 5년이 지난 최근에야 법적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범죄 피해 문제를 ‘사회적 보험’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마일센터 총괄지원단장을 지낸 김태경 서원대 교수(상담심리학)는 “범죄 피해는 운이 나쁘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 ‘빌미를 주지 않았냐’며 피해자 탓을 한다”며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사람을 돌봐줌으로써 사회가 공공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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