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인위적 가격 조절
수요압력 무시한 외발 정책
한국전력 적자·세수 감소 등
어디선가 부하 걸릴 수밖에
사실상 반쯤 현금보조 대책
발표는 쉬워도 폐지 어려워
특정 품목 목표 물가 레벨 등
정상화 조건 명시 후 시행해야
1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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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정부가 주세(酒稅) 물가연동제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서면서 유류세와 공공요금에 이어 맥주·탁주 세금도 물가 대책에 이용되는 모양새다. 공공요금은 직접 나서 가격 상승을 억제했고, 유류세는 한시적으로 인하했다. 주세 물가연동제 폐지도 사실상 세금 인상 유예를 위한 수단이다. 표시 가격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했거나, 조절하려 한다.
성과는 즉시 나타난다.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지표상에선 물가 상승세가 억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 보면 궁극적인 해법이 아니다.
경제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물가는 수요와 공급 양 방향에서 압력을 받는다. 가격이 오르면 당장 물가는 상승하겠지만,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기료가 오르면 에어컨 트는 시간을 줄인다.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수요 상방압력을 그대로 놔둔 채 인위적으로 물가를 조정하겠다는 주장이 된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 등을 내세웠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의 부작용은 어디선가의 부하로 나타난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는 한국전력공사 적자를 불러왔고, 유류세 인하는 세수 감소로 직결됐다. 가격 통제는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한 마취성 요법이다.
주세 물가연동제 폐지는 더 큰 부작용을 남길 가능성도 있다. 맥주·탁주 주세는 종량세로 개편하면서 물가연동제를 도입했다. 종가세인 소주와 조세형평성을 맞추고, 자동·강제적 세금인상이 일어나도록 해 매년 반복될 수 있는 갑론을박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까지 이러한 논리로 주세를 설명했다. 그런데 물가 문제가 튀어나오자 당장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주세 물가연동제가 폐지되면 앞으로 맥주 세금은 한동안 오르기 어렵고, 또 오를 때마다 서민 부담 증가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담배 세금이 비슷했다. 가격이 2500원에서 4500원 오를 때, 혹은 올리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권이 휘청했다.
가까운 예로 유류세 인하를 보면 된다. 애초 유류세 세금 인하는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그럼에도 내달 말로 일몰을 앞두자 연기 여론이 비등하다. 정부에서도 일부 축소한 뒤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도 부작용을 알고 있다. “가격이 올라야 기름을 아낄텐데, 유류세 인하로 가격 자체를 조정하는 것이 맞는 물가 대책인지 의문”이라는 말이 정부 고위부터 중간 관계자까지 고르게 나온다. 그럼에도 이같은 정책을 끊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이용한 가격 보조, 사실상 반쯤은 현금성 지원이기 때문에 발표할 땐 쉬워도 폐지는 어렵다.
시계를 돌려보면 현 정부는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기재부에 대해 서운한 맘을 자주 토로했다. 늘어난 나랏빚과 재정적자에는 “이런 가계부를 넘겨줬다”고 했고, 공공요금 인상 필요성이 대두하자 “한국전력은 이 지경이 될 때가지 뭐했느냐,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요금은 높은 상방압력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다. 재정은 지출 감소를 중심으로 일부 재정수지 개선을 이뤘고 이는 괄목할만 하지만, 세수가 감소하면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된다.
지금이라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한 제한적 재정지원을 기본 구조로 잡아야 하고, 불가피하게 가격 통제를 해야 한다면 조건을 정해야 한다. 기간으로 부족하다면 특정 품목 물가 레벨이 될 수도 있다. 가격 통제 부작용을 알리고, 어떤 시점엔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대책 발표 시점에 명시해야 한다. 그래야 외풍 없이 세제·공공요금을 정상화 할 수 있다.
※‘경제 핫&딥’은 경제 상황과 경제 정책 관련 현안을 보다 깊고 쉽게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경제 상황 진단과 전망은 물론 정책에 담긴 의미와 긍정적·부정적 여파를 풀어서 씁니다. 부작용이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또 다양한 의견을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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