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 대해 건설사와 계약 내용을 조정해 업체 피해를 방지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하지만 일부 현장에선 석 달이 넘도록 해당 지침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공사 현장별로 많게는 수십억 원의 지체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이를 피하려면 무리하게 공사를 서둘러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마저 커지는 상황이다. 정부를 믿고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될 것으로 기대했던 건설업체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2일 정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를 통해 산하 공공기관들에 '화물연대 집단운송 거부 관련 공공계약 집행요령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기재부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 거부 관련 물류 차질로 인해 계약상대자(건설업체)의 피해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며 △계약 기간 연장 및 계약 금액 조정 △지체상금 부과 제외 등을 이행하라고 요청했다. 건설업체들이 화물연대의 파업에 따른 손해를 떠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하며 화주와 건설사들의 협조를 요구했던 정부로서 당연한 후속 조치라는 평가였다.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 피해를 입은 공공 현장 가운데 공사 기간이나 계약 금액을 조정받거나 지체상금이 면제된 건설업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공공 발주처이자 전국 공사 현장 174곳이 화물연대 파업으로 공기 차질을 빚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해당 조치들을 즉각 이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기재부의 계약 조정 관련 공문은 받았으나 당장 이행하기는 어렵다"며 "화물연대 파업이라는 단일 변수만으로 계약 내용을 조정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공기관과 하도급 민간업체의 계약 변경은 현장 피해 사례를 종합해 이뤄지는데 '화물연대 파업'이라는 단일한 이유로 전체 사업장의 계약 내용을 일괄 조정할 순 없다는 것이다.
LH가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시행 중인 아파트 건설 현장은 총 244곳으로, 이 중 174곳(14만5000가구)이 화물연대 파업으로 공기 지연의 피해를 입었다.
한 건설사 대표는 "건설사 잘못도 아닌 이유로 수십억 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는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상황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가 나서 공공발주 현장의 피해액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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