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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이슈 로봇이 온다

"주행중, 조심하세요" 신호 지키고, 계단 오른 커피 배달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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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커피숍에서 로보티즈 직원이 실외 자율주행로봇 '일개미' 안에 커피를 넣고 있다. <박형기 기자>


지난해 말 로봇 전문기업 로보티즈 본사가 위치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일대.

로보티즈의 실외 자율주행로봇 '일개미'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커피 배달을 시켜보기로 했다. 미션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개미가 가게에서 본사까지 700m 남짓 거리를 스스로 왕복 운행해 커피를 가져다주는 것. 우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인근 커피숍에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한 뒤 본사 통합 관제센터에서 가게 위치 정보를 원격으로 일개미에 전달했다. 그러자 본사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일개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피숍으로 향하는 일개미의 뒤를 밟았다. 사람이 경보하는 속도로 운행하다가 맞은편 2~3m 전방에서 사람이 다가오자 "주행 중입니다. 주의하세요"라는 알람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감속했다. 시험 삼아 갑자기 일개미 앞으로 다가가 섰더니 장애물로 인식해 운행을 멈췄고, 곧이어 방향을 틀어 우회로를 찾았다. 횡단보도에 다다르고 나서는 녹색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뀌자 카메라 센서로 주위를 1~2초 후 살핀 뒤 천천히 운행을 재개했다. 커피숍을 향하는 길에는 완만한 턱과 계단도 있었는데 무리 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안정성을 보여줬다.

같은 시각 본사 관제센터에서는 연구원들이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모니터를 통해 로봇의 주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는 로봇이 인지하는 주변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이동 경로 및 현 위치 정보 등이 표시되는 실시간 디지털 지도도 있었다. 센터 한편으로 차량용 핸들이 눈길을 끌었다. 핸들은 돌발 상황을 대비해 원격으로 일개미의 운행을 제어할 수 있는 용도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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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로보티즈 본사 관제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실외 자율주행로봇 '일개미'가 도심을 주행하는 모습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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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티즈 연구원들은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쌓인 상황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딥러닝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가동해 일개미를 학습시키고 있었다. 일개미는 가게에 도착하자 주차 모드로 바뀌었다. 커피를 수령한 뒤 일개미의 상판에 탑재된 디스플레이에서 비밀번호를 누르자 뚜껑이 열렸다. 커피를 넣자 뚜껑이 닫혔고 일개미는 주행 모드로 바꿔 로보티즈 본사를 향해 이동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수령하기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일개미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로봇모션 제어, 환경 인식 비전 처리, AI 기반 로보틱스 확장 기술 등을 갖춰 초당 억 단위의 연산 처리를 하면서 한번 충전으로 통상 30㎞를 자율주행할 수 있다. 로보티즈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9년 12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산업 융합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기업으로 선정됐다. 국내를 넘어 미국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2021년 9월 글로벌 물류 회사 한곳과 손잡고 미국 동부 지역에서 일개미의 물품 배송 테스트를 진행했다"며 "현재 회사의 핵심 경쟁력인 액추에이터(로봇 구동부품)와 함께 자율주행로봇을 앞세워 글로벌 사업 외연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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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티즈의 새해 목표는 자율주행로봇을 앞세워 미국 등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물류 서비스 로봇이다. 최근 들어 사무실, 호텔, 음식점 등 실내 공간은 물론이고 야외에서 이뤄지는 배송까지 로봇을 활용하려는 산업계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보티즈는 올해 자율주행로봇 1000대를 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에는 생산능력을 3000대로 높여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1999년 설립돼 올해로 24년째를 맞은 로보티즈는 로봇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개발·제조하는 로봇 전문 기업이다. 시장에선 로봇전용 액추에이터인 '다이나믹셀'을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 다이나믹셀은 직육면체 모양의 핵심 부품으로, 감속기와 제어기뿐만 아니라 모터, 센서, 네트워크 장비 등이 한곳에 집약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봇의 크기와 정밀도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100개 이상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원격조종 신호를 로봇의 실제 움직임으로 구현해주기 때문에 휴대폰 테스트 장비, 의료용 기기, 요리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국내외 고객사만 300곳이 넘는다.

로보티즈는 2019년 자율주행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존 로봇 하드웨어(HW) 역량에 AI 기술을 접목하면 지능형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류'를 첫 공략 분야로 잡고, 실내 자율주행로봇(집개미)과 실외 자율주행로봇(일개미)을 동시에 개발했다. 김병수 대표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작 '개미'를 감명 깊게 읽어 로봇의 이름을 '개미'로 지었다.

집개미는 실내 공간에서 근거리 배송을 담당하는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이다. 국내 최초로 '로봇 팔'이 탑재돼 엘리베이터 버튼을 스스로 누르고, 객실 문 앞에서는 노크도 한다. 집개미는 2021년 8월 서울 명동 '헨나호텔'을 시작으로 서울 영등포구 소재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 등 100여 개 호텔에서 이용 중이다. 로보티즈는 향후 사무실, 병원, 리조트 등과 같은 다양한 다중이용시설에 집개미를 보급해나갈 계획이다.

2019년 국내 최초로 실외 자율주행로봇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은 로보티즈는 '일개미'의 성능 개선과 지능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능 향상을 거친 일개미 최신 버전은 무게 70㎏까지 적재한 채 최고 시속 7.2㎞로 6시간 운행이 가능하다. 경사도 33%까지 운행할 수 있어 보도와 차도 간 경계석을 넘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극한 외부온도 환경에서도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외 자율주행은 사람과 장애물이 변칙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운행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고, 날씨를 비롯한 환경적인 요소와 함께 수많은 돌발 변수를 총체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딥러닝을 통한 AI 고도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 로보티즈는 2020년 1월 마곡동 일대에서 실외 자율주행로봇의 물류 배송 실증을 진행했다. 일개미는 이 일대 직장인 100여 명에게 2000건 이상 배달 서비스를 문제 없이 수행했다. 로보티즈는 실외 자율배송 과정에서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 일개미를 학습시키고,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AI 기반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일개미의 AI 고도화 업무는 로보티즈의 관제연구개발(R&D)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인력은 53명으로 전체 직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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