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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팀 알퍼의 영국통신] 영국 '블랙베리 따기' 문화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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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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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이어지는 시기는 과일 애호가들이 고대하는 계절이다. 이맘때 사과와 배나무에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먹고 남을 만큼의 양을 수확한 사람들은 종이 상자에 담아 밖에 놓고 행인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인심을 베푼다. 이 시기에는 산과 들에도 열매들이 넘쳐난다. 산딸기, 야생자두 심지어 체리도 있다. 하지만 제일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단연코 블랙베리다. 번화한 런던의 공원, 교외 지역의 길가, 울창한 숲 어디를 가도 잘 익은 까만 블랙베리가 잔뜩 달린 덤불을 발견할 수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커다란 밀폐용기를 가지고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잘 익은 블랙베리를 통에 가득 채워 온다. 하지만 최근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는 블랙베리를 따러 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랍다. 요즘 블랙베리는 슈퍼마켓에서 1㎏에 12파운드 정도에 판매된다. 블랙베리가 한창일 때는 우리 집 근처를 20분 정도만 돌면 블랙베리 1㎏을 쉽게 따 모을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한다면 블랙베리 따는 재미는 배가된다. 나도 유년시절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디저트로 쓸 블랙베리를 따던 기억이 생생하다.

블랙베리를 따던 추억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나뿐이 아닌 듯하다. 블랙베리를 따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미소를 지으며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올해는 블랙베리가 정말 크죠?" "200m쯤 내려가면 잘 익은 블랙베리 덤불이 있어요." 하지만 이들은 말참견만 할 뿐 절대로 블랙베리를 따지 않는다.

영국의 경제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달에도 에너지요금이 다시 한 번 인상될 예정이고 인플레이션은 특히나 장바구니 물가를 강타했다. 이쯤 되면 영국인들은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블랙베리를 따러 나갈 법도 하다. 얼리거나 잼으로 만든다면 1년 내내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는 블랙베리는 영국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왜 영국인들은 블랙베리를 따는 대신 가지에서 썩어 가게 놔두는 것일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12년을 넘게 사는 동안 나는 봄이면 쑥과 달래, 가을이면 은행과 도토리를 주워 모으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봤다. 돈도 절약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블랙베리 따기를 영국인들은 망각했지만 나는 한국에 있었기에 잊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경제적 위기가 더욱 깊어진다면 영국인들도 공짜 유기농 과일이 손만 뻗치면 닿는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매일경제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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