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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日소설보다 한국 젊은 작가”… 지금 대만은 K문학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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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도서전서 한국 책 인기

김호연 소설 ‘불편한 편의점’, 이미예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대만 대학원생 장츠링(25)씨가 지난해 읽은 한국 책 목록이다. 지난 4일 오후 타이베이 국제무역센터.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행사장에서 김연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살펴보고 있던 장씨는 “’레드벨벳’ 등 K팝 가수들을 좋아해서 한국 말도 배우고 ‘장령’이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시·소설로까지 관심이 옮겨갔다”면서 “감동적이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내용이 많아 한국 책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쏘아올린 ‘K북’ 열풍

‘K북(Book)’의 시대가 오는 걸까. 5일 폐막한 2023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는 한국 책과 한국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사벨라 우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재단 이사장은 “K팝과 K무비에 이어 대만 출판 시장에서 ‘또 다른 한류(韓流)’가 감지되고 있다. 더 많은 한국 책이 번역되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또 “넷플릭스 등의 한국 콘텐츠를 보면 원작인 책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다른 플랫폼으로 활발히 옮겨 가더라. 콘텐츠가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출판·드라마·영화산업이 면밀히 연계돼 굴러가는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K북’의 포문은 몇 년 전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열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 대만 최대 전자책 사이트 리드무에서 전자책 부문 1위에 올랐다. 우 이사장은 “대만과 한국이 동아시아의 가부장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책이 대만 여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면서 “이후 ‘며느리 사표(辭表)’ 등 한국 여성주의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흐름이 다른 분야 책으로까지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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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타이베이 도서전 행사장. 대만 출판사 난난서옥 부스에 김연수 등 한국 작가들의 책이 진열돼 있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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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소설보다 한국 젊은 작가 책에 열광”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旗手).’ 이번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서 대만 출판사 난난서옥(暖暖書屋)이 부스에 내건 광고판에 적힌 문구다. 광고판엔 소설가 김연수, 시인 박준 등의 얼굴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모두 이 출판사가 번역한 한국 작가들. 부스에는 김연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박준 시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서미애 추리소설 ‘잘 자요 엄마’, 정현종 시선집 ‘섬’ 등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또 다른 출판사 신경전문화(新經典文化)는 소설가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을 전진배치했다. 이 출판사는 도서전 기간 장류진을 초청,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그 맞은편 부스 대괴문화(大塊文化)도 한국책 코너를 마련하고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김동식 소설 ‘회색 인간’, 이수지 그림책 ‘파도야 놀자’ 등을 전시했다. 렉스 호우 대괴문화 대표는 “대만에선 오랫동안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김초엽, 정세랑 등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편집자들이 열광한다”면서 “우리도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를 출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성인 도서 못지않게 아동 도서의 반응도 좋다. 한국 그림책 출판사 북극곰 부스엔 아이 손을 잡은 대만 엄마들이 끊임없이 들러 책을 사 갔다. 중국어로 번역된 책이 아니지만 그림이 좋아 아이에게 읽히려고 구입하는 것. 이순영 북극곰 대표는 “코로나 발발 전인 2019년 참가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참가했는데 그때보다 저작권 관련 미팅을 두 배 이상 많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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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타이베이도서전에 참여한 대만 출판사 난난서옥에 설치된 한국 작가들을 알리는 광고판. /타이베이=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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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손원평 북토크도 성황

“저는 ‘타인을 혹은 이 세상을 좀 이해해 보자. 이 시도가 어쩌면 실패하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노력은 한 번 해 보자’고 말하는 주인공들을 소설에 써 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삶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요. 하지만 제가 사람들의 삶을 둘러보니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를 못 가져 오고 좌절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제 소설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문학이 가진 어떤 힘이라 생각하고 그런 힘이 국경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설가 김연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런 작품을 쓰도록 하겠습니다.”(소설가 손원평)

지난 4일 오후 열린 ‘한국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소설가 김연수와 손원평의 북토크도 청중으로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서의 문학이 가진 힘을 이야기했다. 손원평 북토크에 참석한 아일린 후(18·고등학생) 양은 “우연히 지나가다 작가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강연을 듣게 됐다. 작가란 어떤 존재이며, 한국 사회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이번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은 지난달 31일 개막해 5일 폐막했다. 6일간 50만 5000명의 관람객이 들었고, 저작권 관련 미팅 670건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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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소설가 김연수가 작품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주제로 북토크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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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곽아람 기자지난 4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소설가 손원평이 작품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을 주제로 북토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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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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