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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발짝 앞서 ‘저항 현장’ 나섰던 임보라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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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반대·평화운동 앞장

“큰 언덕 잃었다” 곳곳 애도 분위기


한겨레

고 임보라 목사. <한겨레> 자료사진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여성인권, 평화 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던 임보라 목사가 4일 별세했다. 향년 55.

임 목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시민운동계와 진보 개신교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성소수자들과 차별철폐운동가들은 “큰 언덕을 잃었다”며 비통해하고 있다.

고인은 1987년 한신대 영어영문과를 입학하고 마친 후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1993년 향린교회가 강남향린교회로 분립할 당시 전도사 신분으로 어린이부를 맡아 목회를 시작했다. 이어 캐나다 유학 도중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했고, 2003년에는 귀국해 향린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다. 민주화운동의 개신교계 본산 격인 향린교회에 몸담은 고인은 약자들을 위한 사역에 몸을 던졌으나, 그 누구도 아닌 기독교인들에 의해 가장 박해받고 비난받고 상처를 입었다.

고인은 2010년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뒤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우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누구를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동성애를 혐오하는 근거로 삼아 폭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다. 2012년 무지개인권상을 수상한 고인은 수상 소감에서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출판을 기념하며, 먼저 간 벗들을 애도하는 예식에서 함께 목 놓아 울었던 그 자리를 기억하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농성장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10대 퀴어들의 울음소리를 기억한다”며 “당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방해하는데 앞장섰던 기독인들이 ‘형제님, 자매님’이라며 서로를 부르면서도 저를 밀쳐내고 ‘자매님, 더러우니 얼른 가서 손을 씻고 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도 했던 그 농성장에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10년 전인 2013년 향린교회가 60주년 기념으로 섬돌향린교회를 분립하면서 담임 목회자가 된 고인은 섬돌향린교회를 성소수자 크리스천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로 만들어 한국교회의 성소수자 혐오에 맞섰다. 고인은 일부 목회자·신학자들과 함께 2017년 <퀴어성서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 번역본 발간을 위해 출판위원회를 꾸렸다. 이후 개신교계 대형 교단들은 임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해 개신교계 최대 교단 가운데 하나인 예장합동교단과 고신, 합신 등이 2017년 9월 총회에서, 예장통합과 백석대신 교단은 그다음 해 9월 총회에서 각각 임 목사를 ‘이단 혹은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했다. 고인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자신을 이단시하는 보수 개신교계의 탄압에도 토론회와 세미나 등에서 “성소수자는 성경적으로도 죄인이 아니고, 사회에서 어떤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항변해왔다.

한겨레

고 임보라 목사. 이정아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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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성소수자들뿐 아니라 신학교와 교단 내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해서도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해 애쓰고, 제주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평화운동과 동물권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는 “누적된 삶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며 비통해했다. 며칠 전 한백교회에서 열린 교육 강사로 온 고인을 보았다는 한백교회 이상철 목사는 “평소 그가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지구와는 다른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성소수자와 동물과 장애인과 생명 일반에게 보여준 분이었다”면서 “늘 언제나 한 발짝 앞서 고통의 현장에 서 있었던 그의 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숨어서만 겨우 체면과 위신을 유지했는데 큰 벽이 무너졌다”고 애통해했다.

그의 별세 소식에 여러 인권 단체의 추모가 이어졌다. 비온뒤 무지개 재단은 페이스북을 통해 “성소수자들을 향해 축복을 아끼지 않았던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한다며 “무지개를 두르고 환하게 웃던 고인의 밝은 미소와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그의 인터뷰를 공유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도 “연대가 필요한 어디에서나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시던 당신의 미소가 벌써 그리워집니다”라고 애통해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혐오와 차별, 불평등에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늘 먼저 나와 곁이 되어 주신 덕분으로 우리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습니다. 이 때문에 떠난 자리가 오래 시릴 것도 같습니다”라고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남편과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2호실이며, 발인은 2월7일 화요일 오전 7시,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5일 일요일 오후 4시에는 임 목사가 소속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예배가, 5시에는 향린공동체협의회 주관 부활증언예배가, 7시에는 강일교회 예배가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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