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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취업과 일자리

‘취업 즉시 100만원’ 내걸어도, 조선업체에 사람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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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선업체들은 최근 넉넉한 일감을 확보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선박 건조 작업 중인 직원들. [사진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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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있는 조선용 배선업체인 A사는 한 달 넘도록 신규 인력을 뽑고 있다. 특별한 경력이나 자격도 요구하지 않는다. 비활선(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선) 관련 작업을 주로 하니 사고 위험도 작다. 일당은 15만원, 월 400만원 이상 벌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이 회사 대표는 “조선업이 고되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 필요한 인원을 언제쯤 채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K조선업체들이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모처럼 일감(수주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일손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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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6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울산이나 경남 거제 등 조선업 거점 도시들에선 ‘숙식 제공+초보 일당 15만원 이상’을 내걸어도 필요한 일손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말 발간된 ‘2022년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 인력은 지난해 10월 말 9만5030명으로 2014년(20만3441명)의 절반 이하다. 업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8239명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인력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다.

인력 부족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위험한 일에 비해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오랜 불황으로 인해 조선업 일자리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인력 확보 노력은 눈물겹다. 지난해 거제시는 ‘조선 업체 취업 시 100만원을 준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협력사를 통해 필요 인원을 구하는 건 기본이다. 익명을 원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60세가 넘은 퇴직자에게 연락해 와달라고 하고, 외국인 근로자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며 “현장에서는 60대 인력이 일하는 건 이제 평범한 장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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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반대로 일감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경기 회복에 따른 물동량 증가와 환경 규제로 인한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겹친 덕이다. 업계는 2030년까지 4000만CGT 이상의 발주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본다. 지난해 K조선업체의 전체 수주량이 1627만CGT였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가동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의 최근 1년간 분기별 조선 부문 가동률은 61.8~63.6% 수준이다. 선가(배 가격)가 바닥을 찍었던 2016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되레 낮다. 2016년 말 당시 클락슨 선가지수는 122.62였지만, 이달엔 162.68로 크게 높아졌다. 상품(배) 가격은 높아졌지만, 가동률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와 조선업체가 급하게 외국인 인력을 수혈하는 이유다. 정부는 최근 ‘조선업 외국인력 도입 애로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조선사와 협력업체는 내국인 근로자 수(3개월 이상 재직한 상시근로자)의 30%까지 외국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20%로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보다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장인 이무덕 동형이엔지 대표는 “외국인 인력이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일단 주 52시간제를 과감히 완화하고, 최저시급도 업종별로 차별화해 조선업 근로자들이 고생한 만큼 더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같은 상황에 저출산까지 겹쳐 있어 앞으로 10년 뒤에는 조선소에서 일할 사람 자체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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